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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의 세번째 밤, 호스텔 복도의 작은 조명아래 앉아 맥주에 안껏 취한 채 펜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본 야간열차는 생각보다 많이 편했다. 잠든 승객들을 태우고 밤새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 피곤함도 잊은채 그 낭만에 젖어 둘째밤을 그렇게 보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리 편하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밤새 뒤척이며 이렇게도 누웠다가 또 저렇게도 누웠다가 하며 아마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이 밝았다. 뮌헨까지는 아직 한시간정도 남은 시각.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들판의 햇살로,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을 떳다. 확실히 침대에서 잔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온몸이 쑤셨지만, 마트에서 사 두었던 우유와 미숫가루로 아침을 해결하고 본격적인 독일에서의 하루를 힘차게 시작했다.

 야간열차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굉장히 힘들다. 목적지의 숙소가 예약되어 있는 경우라면 짐을 풀고 아침식사를 그곳에서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숙소가 기차역과 멀리 있는 경우에는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숙소까지 갔다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기 때문. 그래서 우리는 우유나 빵, 미숫가루로 기차안에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을 많이 쓰곤 했다.




  우리가 도착한 역은 Muenchen Hauptbahnhof, 마침 가까운 곳에 호스텔이 있어서 짐을 맡기고 뮌헨에서의 첫 여행지인 뉨펜부르크로 향했다. 독일역시 도시마다 트램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친절한 독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



 사실 트램 역시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교통수단이다. 소리나 느낌은 지하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상에서 달린다는 점에선 너무나 내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이다. 큰 버스나 지하철이 들어가기 힘든 골목 구석구석에서도, 덩치가 작은 트램은 요리조리 잘도 돌아다닌다.
 유럽의 대중교통을 몇번 이용해 보면서 가장 놀랬던건 모든 교통수단의 티켓확인이 사용자 자신의 자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지하철이나 기차는 우리나라처럼 표를 내고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대로 탈 수 있되 불시에 역무원이 표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트램역시 자기가 스스로 펀칭 기계에 표를 넣어 펀칭을 하는 방식으로 요금 정산이 이루어진다. 언제든지 무임승차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재수없으면 영락없이 걸리고 마는, 좋은듯 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방식이다.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겠지만 모범적인 우리들(?)은 5 €짜리 일일권을 끊어서 트램에 탑승했다.




 

 뉨펜부르크 정원과 궁전, 프라우엔 교회, 시청사, 칼스문 등 너무나 많은 볼거리를 다 둘러보았지만, 오늘만큼은 하나하나에 대한 느낌보다는 전체적인 뮌헨의 분위기를 내가 느낀대로 써 보고 싶다.


 유럽의 도시들 중에서는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라우엔 교회의 첨탑위에서 본 뮌헨 시내의 풍경은 너무나 아기자기 하고 예뻤다. 시내 중심가에도 높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빨간 지붕들과 푸른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마치 내가 동화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도시의 색깔이라는게 이처럼 중요한줄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일까.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독불장군같은 잿빛 건물들 보다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도 아름다운 광장들은 많이 보았지만 뮌헨의 칼스광장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노이하우저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과 칼스 플라츠의 분수대에서 점심도 먹고 이야기도 하면서 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칼스문을 사이에 두고 절묘하게 만나고 있는 그 모습은 인상깊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platz'라는 말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정한 의미의 광장들. 아무것도 없는 곳이야말로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사실 독일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로 '맥주'!
 내가 맥주를 워낙 좋아하기에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의 맥주한잔이야말로 그 어떤 볼거리들 보다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옳았다.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마셨던 맥주한잔은 잊혀지지 않는다. 꼭 맥주가 맛있어서 만은 아닌것 같다. 술은 맛보다는 분위기로 마시는 음료다. 그때 우리가 지쳐있었고 또 힘들었기에 시원한 맥주한잔이 줄 수 있는 의미가 그만큼 더 컷던게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몇번 독일식 맥주집을 들른적이 있었다.(코엑스의 오킴스 브로이하우스 같은) 하지만 아무리 마셔봐도 독일에서 먹던 맥주와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더라. 마치 한국과 독일의 10시간 비행거리가 혀끝으로 느껴진달까.

 뮌헨에서의 모든 시내구경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마리엔광장 옆에있는 '호프 브로이'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호프 브로이의 커다란 건물은 물론 야외 좌석까지 사람들로 가득찬 모습을 보며, 내가 정말 독일에 와있다는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 까지는 성공! 그러나 지금부터가 난관이었다. 메뉴판이 모두 독일어로만 되어있는 것이다!
 함께 있던 J가 어느정도 독일어를 해독해 내서 겨우겨우 술은 시켰는데 정작 안주를 시키는게 문제였다.
 세계에서 족발을 먹는 민족은 우리나라와 독일 단 두곳뿐이라고 한다.  독일의 전통 요리중에 분명히 족발 비슷한게 있는건 알고 있지만 독일어로 이름을 모르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우리가 30분 넘게 안주도 못시키는 모양새가 너무 안스러워 보였는지 옆테이블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던 독일 아주머니 한분이 도와주시겠다며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자 이제 '족발'이라는걸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게 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난 메뉴판에 그림을 그려서 설명을 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독일식 족발(슈바인택슨)을 맛볼 수 있었다. 휴~ ^^
 내가 그린 돼지 그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옆테이블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한참동안이나 내 그림을 들고 박장대소 하셨다. 결국 그림을 가져가고 싶다고 하셔서 드렸다~

 

 이렇게나 힘들게 시킨 맥주와 족발, 소세지.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있을까! 정말 독일에서 먹는 맥주야말로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면 세상 모든 근심을 다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맛이었다. 안주로 나온 슈바인 택슨도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쫄깃한게 아주 근사한 안주였고, 물에 담겨서 나온 독일식 소세지 역시 말캉한게 소스와 함게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분위기 좋고, 사람 좋고, 술도 좋고, 음식도 좋고... 유럽의 남은 일정을 전부 호프 브로이에서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마시다보니 어느새 8시가 다 되어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이나 남은 것 같았지만 해지는 슈템부르크 호수를 보기 위해서 유스호스텔에 짐을 맏긴 뒤 Hauptbahnhof 에서 S6를 타고 Stemburg로 향했다.

 오늘은 정말로 긴긴 하루였다. 본것도 많고, 한것도 많고,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가득해서 기분이 좋다.
 


 슈템부르크 호수는 뮌헨 외곽에 위치한 조그만 호수다. 간이역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호수로 연결된다. 비록 기대했던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한적한 호수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냥 잠을 자버리기엔 너무 아쉬워서 S6를 타고 일부러 bahnhof를 넘어 마리엔 광장까지 갔다가 밤거리를 걸으며 칼스 플라츠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뮌헨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번화가는 밤이 깊어갈 수록 점점 활기를 띄는 반면에, 유럽의 밤거리는 황량해 보일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대신 이름없는 악사들의 노래소리만이 텅빈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흥겨운 노래소리에 취해 어두운 뮌헨의 밤거리를 거니는 기분또한 너무나 즐겁다.



 시설 안좋기로 악명높은 유럽의 유스호스텔. 출발하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의 걱정어린 충고를 들었던 터라 내심 불안했었는데 우리가 머문 'for you muenchen'은 시설도 깔끔하고 기대 이상이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다른나라 사람들과 함께 방을쓰는 유스호스텔만의 재미를 느끼고 싶었는데 우리방은 6명 모두 한국사람이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야간열차를 빠져나와 침대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오늘의 지출

트램 1일권 5 €
님펜부르크 입장권 4 €
알테 피나코텍 입장권 4 €
점심 맥도날드 4.9 €
저녁 호프브로이 10 €
노천 레스토랑 맥주한잔 3.5 €

                                                                                                                                total 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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