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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고사 바이크폴로 대회에서 잠시 빠져나와 에스빠냐 광장(Plaza España)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 미리 사라고사에 도착해있던 우린이와 형윤이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 한 장 없이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려니 막상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사라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한 두어번 물어 방향을 잡자 금새 에스빠냐 광장에 도착했다.


사라고사는 지금 도시 전체가 트램 공사로 정신이 없다


 에스빠냐 광장은 사라고사 구시가지 남쪽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내가 찾아갔을땐 트램 공사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Alberto와 Jose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정확히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라고사에 있던 트램을 확장, 보수 하는 공사중이라고 한다. 완공되면 꽤 볼만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보행자들에게 그저 불편하고 위험한 공사판이다.

 드디어 형윤이랑 우린이를 만났다. 일단은 괜찮은 식당을 찾아가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어떻게 식당을 골라야 잘골랐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고 있는데... 우린이가 다짜고짜 지나가는 행인을 잡고 식당좀 추천해달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찾아 들어간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첫번째 접시, 세 명이라 세 가지 요리를 하나씩 시켰다


 스페인의 식사 문화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좀 유별나다. 일단 흔히 얘기하는 '메누 델 디아(menú del día, 오늘의 메뉴)'는 두시 이전에는 주문조차 불가능하고, 각각의 요리를 따로 시키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식사비가 많이 나오게 된다. 다행히 우리는 한창 점심시간일때 레스토랑에 도착해 늘 하던것 처럼 '메누 델 디아' 세 개를 시켰다.

 '메누 델 디아'는 첫번째 접시(Primero Plato), 두번째 접시(Segundo Plato), 그리고 후식과 음료, 빵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여러명이서 먹게되면 여러가지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좋다. 그렇게 해서 먼저 첫번째 접시로 엠부띠도스(Embutidos, 속을 채워만든 소세지 종류를 통칭하는 말)과 치즈, 야채 버섯 볶음, 그리고 콩으로 만든 슾이 나왔다.


한국식 수제비와 비스무리한 맛이 나던 슾 요리


 두번째 접시로 나온 '뽀죠 아사도(Pollo asado, 닭고기 구이)'와 감자 수제비 비스무리한 슾 요리. 가격도 괜찮고 마침 배가 고프던 터라 배불리 잘 먹고 나왔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와 다같이 잠깐 바이크 폴로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팀 선수중 Benjamin이 우린이와 아는 사이라 응원도 할 겸 갔었는데, 하필이면 그 경기가 세계 2위팀과 붙은 경기라 4:0으로 참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 자전거를 타고 혼자서 사라고사를 돌아다닐 차례다


 마드리드에서 300여km나 떨어진 사라고사에 뚝 떨어져 있지만, 나에게는 지금 자전거 있다! 예전부터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해보는게 꿈이었는데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도시 안에서 살짝 돌아다니는게 전부지만... 어쨌거나 처음 와보는 사라고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게 너무 신나더라.

 고민끝에 우린이, 형윤이랑은 잠깐 떨어져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알폰소 1세 거리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라고사의 구시가지는 정말 조그맣다. 에스빠냐 광장을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사라고사의 가장 번화가인 '알폰소 1세 거리(Calle de Alfonso l)'가 나온다. 스페인은 12월 초(혹은 11월 중순) 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시작하는데, 이곳 거리 역시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라도 된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아직 불은 켜지 않았지만 머리위로 매달린 장식들과 꽃들도 눈에 띈다.



스페인에는 참 많은 광장이 있지만, 사라고사 만큼 강렬한 곳은 별로 없었다


 얼핏 보면 서울의 명동과 비슷한 느낌의 거리지만 멀리 보이는 '누에스뜨라 세뇨라 델 삘라르 대성당(Basílica de Nuestra Señora del Pilar)'의 전경 때문인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 속도를 늦추고 조금 더 대성당 쪽으로 다가갔다.


 

바실리카 파노라마 (클릭해서 크게 보세요)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되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성당(정확히는 바실리카)이었다. 사라고사 구시가지가 상당히 작은걸 생각하면 거의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의 규모다. 내부는 입장료 없이 들어가볼 수 있었는데, 마침 미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때라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한바퀴를 둘러봤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일체 금지다. 



바실리카 말고도 광장에는 꽤 큰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바실리카가 위치한 광장에는 사라고사 시청, 까떼드랄(Catedral, 대성당), 로마시대의 포럼(Foro) 같은 주요 건물들이 함께 모여 있어서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사라고사는 이 광장만 와보도 다 봤다고 해도 될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카메라를 들고 광장을 조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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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실리카가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워낙 크다보니 광장도 동서방향으로 상당히 길게 생겼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뒤로하고 광장에 울려퍼지는 종소리,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관광객들의 모습이 한 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사진으로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담고 싶어서 열심히 파노라마를 찍었다.




자, 이제 어디로 가볼까나


 구시가지와 광장을 다 돌아보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 잠깐 고민하다가, 이왕 자전거가 있는 김에 강가를 한 번 달려보고 싶었다. 마드리드에 '만싸나레스 강(Río Manzanares)'이 있다면 사라고사엔 '에브로 강(Río Ebro)'이 있다. 마침 해도 지고 바람도 선선하니 기분도 내볼 겸 강가로 향했다. 




사라고사의 야경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광장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삐에드라 다리(Puente de Piedra)'를 건너니 이제서야 바실리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검푸르게 변해가는 저녁 하늘을 뒤로 하얗게 빛나는 바실리카의 야경이 정말 장관이다. 정말이지 사라고사의 스카이라인은 혼자서 다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고보니 전에 형윤이가 사라고사에 다녀와 보여줬던 예쁜 스카이라인 사진도 이 바실리카였다는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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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정말 크다!


 구시가지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강을 따라 살짝 갔다가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계속 달렸다. 달리면서도 내내 바실리카가 시야에서 사라질 생각을 않는다.


강둑에 앉아 잠시 쉬어가면서...


 에브로 강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달리면 지도상으로는 엑스포 공원이 나온다. 밤이기는 하지만 이 근처로 가면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다리도 있고 나름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가볼 생각이었다. 헌데 강가 산책로를 따라 달리면 달릴 수록 어째 인적이 드물다. 심지어 얼마 못가서는 가로등도 없고 포장도로 마저 끊긴다. 낮에 얼핏 본 사라고사 도심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길래 기대했었는데 결국 얼마 못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스텔의 추억


 미리 우린이, 형윤이랑 만나기로 했던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호스텔에 도착했다. 날씨도 춥고 무엇보다 전날 합숙소에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너무 피곤해서 자연스럽게 호스텔을 찾아왔다. 조금 이따 저녁 아홉시에는 사라고사에 와있는 Jose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그 전에 뜨끈한 물로 샤워라도 할 생각이었다.
 막상 호스텔에 와보니 우린이랑 형윤이도 먼저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4인실 도미토리 룸에 각각 침대 하나씩을 맡아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내리고 짐을 한창 정리하는데 문득 예전 생각이 난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도미토리 식으로 된 호스텔은 지난 2007년 유럽여행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하긴 인도, 아프리카 여행때는 이렇게 생긴 숙소에 묵은적이 없으니 아마 그 이후 처음이 맞을거다.

 어쨌거나 뜨끈한 물로 샤워도 하고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사라고사는 예전에 한국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먼저 왔었던 Jose의 고향이다. 물론 Jose 역시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살고 있지만 마침 아버지 생신이 있어서 사라고사에 와 있다기에 밤에 만나서 함께 놀기로 했다. 자전거도 세워두고 간단한 짐만 챙겨서 슬슬 호스텔을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맥주나 한잔 살짝 하고서 일찍 돌아와 자고싶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생각치도 못한 타이트한 일정이었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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