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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 마드리드에 교환학생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파스타'라고 하면 꽤 고급 음식쯤으로 치부하곤 했었다. 그저 여자친구랑 그럴싸한 경치좋은 식당에 가서 VAT빼고 18000원쯤 내야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정도? 물론 한국에 있을때도 주말이면 가끔 까르보나라나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해먹곤 했었지만 끓는 물에 면 데치고 인스턴트 소스 한국자 듬뿍 얹어 먹던게 전부였다.

 교환학생으로 온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거의 하루도 안빼먹고 매일같이 집에서 요리를 해먹다 보니 자연스레 장보는데도 스킬이 생기고 요리하는 일 자체에도 꽤 재미가 붙었다. 전에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긴 했으나 이젠 정말 '요리를 해야할 이유'가 생겼으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처음엔 요리를 곧잘 해먹던 친구들도 하나둘 귀차니즘으로 인해 인스턴트나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메뉴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반해, 난 한번 요리를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다. 일단 자리잡고 앉아서 마늘 까는데서부터 요리를 시작하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요리를 직접 했던적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요리를 꽤 잘하시는 편이라 딱히 내가 나서지 않아도 받아먹는데 익숙해져 있었던것 같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걸 생각하면 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선 그야말로 하루일과중 가장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바로 식사 준비하는 시간이다! 늘 자취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라면 지겨울법도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밥해먹고 혼자 사는 시간이다보니 매일매일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사오던날 이렇게 초라했던 내 찬장이...


...지금은 이렇게나 풍성해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곧잘 이것저것 해먹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건 역시나 파스타. 우리나라에선 데이트용 꽤 고급 음식으로 생각했었지만 여기선 가장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교환학생들에게 너무 친숙한 일상적인 음식이다. 전에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스페인의 물가는 대체로 비싼 편이지만 야채나 고기같은 식자재는 되려 한국보다 싸다. 덕분에 싱싱하고 좋은 재료들을 실컷 이것저것 써가며 그때그때 색다른 파스타를 만들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먹는 얘기만 해도 쓸게 참 많은 교환학생 생활이지만 오늘은 그 첫번째로 그동안 만들어 먹었던 '파스타'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해볼까 한다.

 




까르보나라
(계란 노른자, 마늘, 양파, 양송이, 베이컨, 통후추, 바질)

 새 집으로 이사와서 제일 처음 해먹었던 파스타. 흔히 크림 파스타라고 하면 생크림과 우유 조금 넣은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걸 떠올리지만, 진짜 까르보나라는 계란 노른자만 가지고 하는거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스타를 자주 먹게 될거라곤 생각도 안했었다. 내 식습관이 의외로 다분히 한국적이어서 이사온 초반에는 주로 밥종류를 해먹었던것 같다. 이 때 만들어먹은 까르보나라는 약간 '특식'개념이었다.




까르보나라 ver.박우린
(계란 노른자, 마늘, 양파, 양송이, 베이컨, 통후추)

 첫 파스타를 해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이가 놀러와 까르보나라를 한번 더 해줬다. 찬찬히 재료 다듬고 사진찍고 딴짓해가며 오래도록 요리하는 내 스타일과 달리, 오랜 자취생활로 다져진(?) 우린이는 뭔가 스삭스삭~ 빠르게 뚝딱 하고 요리를 해버린다. 계란 노른자만 가지고 만든 까르보나라는 확실히 다른 크림 파스타 종류보다 더 깔끔하고 덜 느끼한 구석이 있어서 좋다.



하몬(jamón) 까르보나라
(계란 노른자, 마늘, 양파, 하몬jamón, 통후추, 파마산치즈)

 베이컨으로 만드는 까르보나라가 어쩐지 심심해서 살짝 변화를 시도했던 요리. 하몬(jamón)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여 절여 6개월 정도 건조시킨 스페인의 대표적인 저염식품중 하나다. 익히지 않고도 여러 요리에 자주 들어가지만 베이컨 대신 팬에 살짝 볶아서 곁들여봤다. 하몬 자체가 워낙 짭잘한 음식이라 칼칼한 소금간이 중요한 까르보나라에 아주 잘 어울리더라.




체다치즈 마카로니
(마카로니, 마늘, 양파, 베이컨, 양송이, 체다치즈, 계란 노른자, 통후추, 파마산 치즈)

 김밥 싸고 남은 체다 치즈가 있어서 까르보나라에 넣어 조금더 느끼하게 만들어본 요리. 마카로니는 선반에 굴러다니는게 있어서 한번 써봤는데 식감이 영 별로더라. 한국식 파스타에 익숙해져있는 입맛이라 그런지 이때 이후로는 늘 스파게티 면만 이용해서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다음엔 한번 다른 종류의 파스타도 도전해 보리라.



새우와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새우, 양파, 마늘, 통후추, 완두콩, 양송이,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느끼한 까르보나라가 질려서 토마토 소스 파스타에 도전해봤다. 원래는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만드려고 했는데 갈아놓은 소고기를 너무 크게 포장해서 파는 바람에 집에 있는 새우를 그냥 이용했다. 보통 그날 만들어먹을 요리는 학교갔다가 자전거타고 집에 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집 근처에 있는 시장이나 까르푸에 들려서 재료를 사오곤 한다.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 생각을 하고 걸쭉한 토마토 페이스트를 사려고 했었는데 까르푸에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원하는 그런게 없었다. 대충 통조림을 흔들어보고 비슷하다 싶은걸 사왔는데 토마토 페이스트보다는 케찹쪽에 더 가까워 실망했던 기억이. 그냥 꿩대신 닭삼아 눈 딱 감고 만들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던것 같다.


새우와 매운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새우, 베이컨, 양송이, 양파, 마늘,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통후추, 오레가노, 매운고추 ver.florent)

 지난번 요리때 사둔 토마토 페이스트가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편이라 아쉬움이 컸기에...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해봤다. 우리집에 같이 사는 프랑스 친구 florent의 고향은 프랑스 본토가 아닌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 옆에 있는 리유니온 섬이다. 모리셔스 섬과 바짝 붙어있는 조그만 프랑스령 섬이지만 아프리카와도 가깝도 인도양에 위치하고 있기에 유럽, 아프리카, 인도의 모든 문화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곳이라고 한다. florent가 요리할때면 늘 사용하는 매운 고추가 있는데 할라피뇨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맵고 강한 맛이 나는 재료. 한창 파스타를 만들다가 한 숟갈만 빌려서 넣어봤는데 아주 칼칼하고 화끈한게 내 입맛에 딱이더라. 개인적으로 그동안 해먹은 파스타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맛!



에멘탈 치즈를 곁들인 블루치즈 스파게티
(블루치즈, 닭다리살, 생크림, 양파, 마늘, 양송이, 완두콩, 통후추, 오레가노, 파마산 치즈, 에멘탈 치즈)

 갑자기 아주아주 느끼한게 먹고 싶어서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치즈 가게에 들러서 블루치즈를 사왔다. 배가 많이 고팠을때라 닭다리살을 듬뿍 넣고 생크림에 블루치즈를 녹여 자작하게 끓인 소스를 만들었다. 거기에 파마산 치즈 가루를 살짝 뿌리고 마지막에 에멘탈 치즈까지 얹으니... 으으 맛있긴 엄청 맛있었지만 엄청(!) 느끼했다. 기껏 한그릇 싹 비우고 나서 밤늦도록 김치를 그리워했다는 슬픈 전설이...






참치와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참치, 마늘, 양파, 양송이,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오레가노, 통후추)

 이 글을 쓰기위해 내 방으로 돌아오기 전, 집에 친구가 놀러왔길래 급하게 만들어준 파스타. 소고기나 닭고기, 베이컨이 딱히 없어서 고민하다가 참치를 넣고 만들었다. 전에 사둔 토마토 페이스트도 조금 부족하게 남아있어서 급한대로 케찹을 좀 넣었는데 오히려 달짝지근한게 맛있더라.



번외편

정체 모를 푸른 식물!?


직접 재료를 준비해와 요리를 해준 친절한 marco!


이상하게 우리집 부엌은 늘 남자들의 차지다


어마어마한 면과 소스의 양을 보시라!


드디어 완성된 marco표 토마토 스파게티!


Que aproveche!(맛있게 드세요!)


참치와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ver.marco
(참치, 마늘, 양파,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통후추, 정체모를 푸른 식물?)

 우리집 옆옆집에 사는 이탈리아 친구 marco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만들어줬던 파스타. 사실 한국에서는 참치를 넣은 토마토 파스타를 본 적이 없었는데 marco 덕분에 이때 처음 알았다. 이탈리아에선 이렇게 자주 먹냐고 물어보니 가난한 자취생은 참치가 싸서 자주 해먹는다는 재미있는 답변을 받았던.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직접 만들어주는 파스타라 엄청(!) 기대를 했었는데, 하도 marco가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길래 조금 웃겼던 기억이 있다. 자꾸만 옆에 서있는 나한테 맛 괜찮은지 간좀 봐달라며 자신없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면 삶는 시간에 대해서는 절대 참견 못하게 자존심을 내세우던(?) 재미있는 모습도 기억이 난다. 파스타는 원래 일인분씩 따로 만들어야 진짜 제대로 맛이 나는 법인데 대량으로 만든것 치고는 아주 맛있게 먹었었다.



인스턴트 스파게티 ver.김진원
(냉동 스파게티, 껍질콩judía)

 전에 진원이네 집에 놀러갔을때 얻어먹은 파스타. 스페인은 냉동식품이 꽤 잘 발달해 있는 나라라 슈퍼마켓에만 가도 각종 인스턴트, 냉동 식품들이 즐비하다. 볶음밥, 파스타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팬에 넣고 살짝 익혀만 주면 꽤 그럴싸한 요리가 된다. 라 시레나(la sirena)같이 아예 냉동식품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군데군데 있을 정도!

 의외로 맛도 꽤 괜찮다. 가끔 바쁠때는 이런거 몇개 사다두고 먹는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열심히 면을 나눠담은 숙련된 조교(?)의 손놀림!


요리하는 중간중간 정리도 열심히...(해야 할텐데)


차린건 없지만 맛있게 드시지요!


 한번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늘 뭐 해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우린이가 '너 가정주부 다 됐다며'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근데 정말 내가봐도 그런것 같다. 그동안은 맛있는걸 '먹는데'에서 즐거움을 얻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맛있는걸 '요리하는데'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어가고 있는것 같다.

 물론 즐겁게 요리해서 내가 먹는 것도 좋지만, 더욱 즐거운건 내가 만든 요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함께 나누어 먹을때다.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앞으로도 나의 요리시간은 늘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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