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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장에 수도 없이 썼던 그 말, '이 마드리드에서는 모든 일들이 생각치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부정적인 늬앙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예상할 수 없는 즐거움이 늘 눈앞에 펼쳐지기에 계획도, 추측도 무의미하다는 뜻. 다만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진심으로 즐기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게 바로 'La vida del intercambio(교환학생의 삶)'이기에! 하하하

 바이크 폴로(BIKE POLO)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어떻게보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어느날 수업 끝나고 학교 중정에 잠시 앉아있는데 독일친구 Paul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고 금새 친해져 술한잔 하러 가면서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 친구 Benjamin를 무작정 데리고 갔다(당연히 우리 셋은 당시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너도 갈래?'라는 말 한마디 건넸을 뿐인데 어느새 맥주집에 도착해 있었다). 알고보니 Benjamin은 프랑스에서 바이크 폴로를 즐기던 친구였고, 마드리드에도 팀이 있으니 나에게 한번 와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좀 황당무개한 전개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난 지금 매주 일요일마다 바이크 폴로 마드리드 팀에서 서너시간씩 폴로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Paul, Benjamin과는 학교 친구들중 가장 친한 단짝이 되었다.

바이크 폴로, 마드리드에서 만난 멋진 스포츠!


 폴로(POLO)는 원래 말을 타고 하는 스포츠로 한국에서는 의류 메이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크 폴로는 말 그대로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하는 폴로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른 말로는 '하드코트 바이크 폴로(Hardcourt Bike Polo)'라고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하기 때문에 흙바닥이 아닌 포장된 경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스포츠지만 바이크 폴로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꾸준하게 퍼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스포츠다. 주로 픽시(Fixed Gear Bike)를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아 픽시 유저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지도가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나이도, 하는 일도, 국적도 다 다르지만 바이크 폴로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바이크 폴로라는 이름도, 경기하는 장면도 참으로 생소한 이 스포츠. 의외로 룰은 매우 간단하다. 하드코트 바닥의 사방이 막혀있는 경기장에서 보통 3:3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경기장이 이보다 작은 경우엔 2:2도 무방하고 더 크다면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도 있다. 자전거의 종류는 크게 제한이 없지만 핸들 폭이 너무 넓거나 바퀴가 작은 미니벨로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픽시를 가지고 하는 스포츠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건 아니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은 픽시가 아닌 일반 기어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단다.

 경기용 볼은 일반 필드하키용 공을 사용하고 공을 치는데 사용하는 말렛(Mallet, 스페인어로는 Palo)은 끝부분의 모양에 따라 아메리칸 스타일, 유러피언 스타일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외의 자세한 룰은 다음과 같다.

- 한 팀의 구성인원은 3명으로 한다
- 경기중에는 발이 땅에 닿으면 안된다
- 어떠한 자전거도 관계 없지만 핸들 끝부분이 막혀 있어야 한다
- 공은 거리에서 사용되는 하키용 공이다
- 말렛은 넓은 측 끝이 둥근 모양이어야 하며 막혀 있어야 한다
- 보통은 5점 내기로 진행하지만 3점도 무방하다
- 시간은 10분을 기준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 바꿔도 무방하다
- 자전거 위에 있는 상대를 넘어뜨리지 않는 선에서의 접촉은 허용된다
- 주황색 콘을 자전거 길이만큼 넓혀서 골대로 사용한다
- 말렛의 둥근 끝부분으로 슛팅을 한 경우에만 득점이 인정된다. 넓은 부분으로 슛팅하면 인정되지 않는다.
-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같은 쪽 손으로 말렛을 잡아야 한다.



의외로 체력소모가 엄청난데... 이녀석들은 잘 지치지도 않는다!


 처음 교환학생으로 마드리드에 와서 가장 목말라 했던건 역시나 운동이었다. 혼자하는 운동도 좋지만 외국 친구들과 함께 땀흘려 운동하며 친구가 되어보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있을때 유일하게 하던 팀 운동은 대학교 4년 내내 야구부로 활동했던게 전부다. 막상 스페인에 와보니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아예 관심 밖에 스포츠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잘 안하던 축구를 하기도 좀 그렇고... 이래저래 고민하던 중에 바이크 폴로를 만난 셈이다!

 난 자전거를 참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때는 주로 속도를 즐기는 편이라 미니 스프린터를 구입해서 열심히 학교에 타고다녔고 스트라이다를 타고 제주도 일주를 하기도 했다. 자전거에 많은 애정을 쏟은 덕분인지 한번은 문화관광부 산하 월간지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규빈씨의 하루'라는 글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바이크 폴로를 만나고는 자전거의 전혀 다른 새로운 면을 또 발견한 느낌이다. 한국에 있을때는 오로지 속도에만 집착했다고 한다면 폴로는 속도보다는 기술적인 면과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늘 경기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내 사진이 별로 없다


 9월 초 처음 바이크폴로 경기장을 찾았을땐 '이걸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던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새 친구들을 만나게되니 이름을 말하고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스포츠의 장점은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금새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 한 세 경기쯤 지켜보고선 조심스레 'Puedo entrar?(나 들어가도 되니?)'라고 물어보고 곧바로 경기에 투입됐다. 자전거는 오래 탔어도 난생 처음 접하는 스포츠가 어째 어색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금새 적응하게 되더라. 그날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모든 경기를 마치고 친구들로 부터 극찬(?)을 받았다. 오늘이 정말 처음 해본거 맞냐는 질문도 수 차례 받았다. 알고보니 바이크 폴로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경기는 커녕 말렛으로 공을 치는것 조차 잘 못한다고 한다.



자전거 망가지는 것도 다반사! 하지만 아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매주 일요일 저녁 바이크 폴로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알레한드로, 알바로, 액또르, 호르헤, 후안, 세바스띠안... 처음엔 서먹서먹 했던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 팀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더욱더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실력도 많이 늘었다. 지난주 일요일 경기때는 무려 네 골을 넣었고 마지막 경기에선 멋드러지게 결승골까지 넣었다!

 밖에서 보기엔 그저 '신기한 스포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몰라도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 한 판 시원하게 땀을 쭉 흘리고 나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짜릿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가 또 없다. 물론 좁은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이 자전거로 부대끼다보니 위험한 상황도 간혹 생긴다. 거의 매 주 경기마다 자전거 한대씩은 휠이 구부러지고 어딘가 하나씩 망가지는 부분이 생길 정도. 하지만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 팀 친구들은 모두 자전거 고치는데 명수들이다. 경기중에 휠이 구부러지면 재빨리 코트밖으로 나가 휠을빼서는 뚝딱뚝딱 고쳐서 순식간에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폴로를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모임이 또 어디있으랴.









지난주 일요일 찍어둔 바이크 폴로 사진들, 다시봐도 멋지구나!


 다음달 9일에는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 챔피언쉽에도 출전하기로 했다. 대회가 코앞이라 그런지 지난주부터 훨씬 더 강도높은 경기가 매번 펼쳐진다. 가만 생각해보면 유럽에와서 이렇게 난생 처음 접하는 스포츠를 매주 즐기고 있고 대회까지 나가게 된 지금의 내 모습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글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 마드리드에서는 모든 일들이 생각치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을 새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벌써부터 돌아갈 날이 걱정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과연 계속 바이크 폴로를 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경기를 마치고 돌아와 일기장에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바이크 폴로를 주제로 하는 멋진 영상을 하나 만들어볼 계획이다. 이 곳에서의 멋진 추억을 사진으로만 남겨두기엔 아까운데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개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뭐 나중 일이야 어찌되든 간에 일단은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즐길 생각이다. 저 멀리 한국에서 온 동양인을 흔쾌히 팀에 받아준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처음 나에게 바이크 폴로를 접하게 해준 Benjamin에게도 너무도 고맙다! Gracias a vosot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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