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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일주일간의 '하우스 헌팅' 끝에 우리 셋은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 둥지를 틀었다. 사실 난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만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번도 혼자 살아보거나 자취를 해본 경험이 없다. 집을 떠나 살았던건 고등학교때 기숙사에 2년간 살았던 경험이 전부. 하지만 혼자 밥해먹고 빨래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 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앞섰던게 사실이다. 비록 경험은 없었으나 어디 가서도 잘 해먹고 잘 사는게 나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하하하). 오죽했으면 그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로 부터 얻은 별명이 '바퀴벌레'였을까. 어감은 그닥 좋지 않지만 뭐... 그 만큼 지구상 그 어디에 던져놔도 잘 살 놈이란 뜻이란다.

마드리드는 북쪽지역일수록 더 살기 좋고 안전한 편이다. A라고 찍힌곳이 우리집!


 5º Izquierda, Calle de Maudes 16, 28003, Madrid.  오늘은 간단하게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을 소개해보려 한다. 마드리드의 주소체계는 현지인에게나 나 같은 외국인에게나 여러모로 편리하게 되어있다. 모든 길들은 이름이 붙어있고 길 한쪽으로는 짝수 번지, 반대편으로는 홀수 번지가 순서대로 배열되어있다. 마드리드 자체가 서울에 비해 상당히 작다는 부분도 감안해야 겠지만, 길 이름과 번지수만 말해도 척척 알아서 찾아가는 택시기사들이 여간 신기한게 아니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봐도 길 이름만 대면 어디에 있는건지, 여기서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금새 대답을 해준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도 새 주소를 쓴다고 몇 년 전부터 도로명 표지판만 몇개를 바꿨는지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마드리드 같은 도로명 주소체계가 도입되기 힘든건 도시 자체의 스케일 차이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서울의 그 많은 길과 골목을 이름붙이고 외우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닐 터.

 어쨌거나 다시 집얘기로 돌아와서. 우리집이 위치한 참베리(chamberi)는 마드리드 센트로를 중심으로 북서쪽에 위치한 커다란 동네를 일컫는 말이다. 참고로 마드리드에는 이 외에도 센트로(centro), 떼뚜안(tetuan), 살라망까(salamanca), 라띠나(latina), 레띠로(retiro) 등의 행정 구역이 있다. 서울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작긴 작은 도시다. 참베리는 솔(sol)같은 유명 관광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라 치안도 좋은 편이고 조용하니 살기 좋은 동네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내 중심에 접근하기 그리 어려운 편도 아니다. 마드리드가 워낙 작은 도시인지라 걸어서도 얼마든지 다닐 수가 있고,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10분만 타고 가면 시내 어디든 쉽게 도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참베리의 결정적인 장점은 앞으로 한학기 동안 다녀야 할 학교(UPM)와 가장 가까운 동네라는 점. 자전거를 타고 10분이면 학교 건물에 도착할 수 있다. 이래저래 여러모로 편리한 동네다.

비교적 새건물이라 외관은 다소 유럽스럽지 않다만...


 지금 집이 딱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하긴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은 너무나 밋밋한 외관. 사실 마드리드 교환학생이 결정되었을때만 해도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집에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었다. 뭐 적당히 고풍스러운 파사드와 고딕 풍의 난간과 창틀, 뭐 그런 순수한 로망들. 그런 상상에 비해서 우리집은 너무 현대화된 딱딱한 외관이다. 마치 우리나라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를 보는 듯한 생각도 들 정도. 하지만 살아보니 깨끗한 신식 건물에 들어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사람 사는게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닐터이니.

 또 한가진 방에 딸린 개인 발코니가 없다는 점. 이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작게라도 방마다 발코니가 딸린 집들이 많다. 발코니에 나가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커피도 한잔 하고,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발코니는 없어도 큰 창으로 하루종일 햇빛이 따땃하게 잘 들어오니 그걸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집구경 하러 와서 찍었던 방 사진들. 지금은 모두 주인을 찾았다.


 마드리드에서 대부분의 교환학생, 에라스무스들이 살고 있는 piso compartido. 흔히 말하는 '쉐어'의 스페인 버전이다. 우리집엔 방이 총 7개, 거실 1개, 주방 1개, 화장실 2개가 있다. 보통 compartido들이 3~5명 정도가 한 집을 쉐어하는데 비해 우리집은 규모가 조금 큰 편이다. 물론 얘기를 들어보니 한 집에 열 명 넘게 사는 경우도 있단다. 사람이 너무 적으면 심심할것 같고, 또 너무 많으면 복잡할것 같기도 하고. 하긴 누가 같이 사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이 집에 계약할 당시만 해도 사람이 들어온건 내가 처음이었다. 남은 여섯개의 방에는 어떤 친구들이 들어올까 기다리는 재미도 있을것 같아 덜컥 계약해 버렸다. 그리고 이사가던날 드디어 바로 옆방에 들어오게 될 Alex라는 독일 친구를 만났다. 건너방에는 jimena라는 스페인 여자아이도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지만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라 두 명 모두 짐만 옮기고는 몇 일간 방을 비웠다. 덕분에 이사온 첫날 밤에는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자야하는 공포스런(?) 경험도 했었다.


요리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밝은 주방!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과 거실. 사실 우리집 거실은 다른 집들에 비해서는 거실이라고 하기 조금 민망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집을 구경하다 보면 거실이 아예 통으로 한 방처럼 되어서 발코니도 있고 그런 경우를 종종 보는데... 우리집 거실은 그냥 통로처럼 되어서 간단히 식사만 할 수 있는 정도.
 
 부엌은 나름 깨끗하고 빛도 잘 들어서 요리하는 맛이 난다. 사진은 이사온 첫날 찍은거라 저렇게 깨끗하지만... 지금은 저런 모양새는 아니다. 영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게 초반과 후반의 냉장고 속 변화였는데, 우리집도 요새는 냉장고가 많이 복잡해졌다. 사람사는 냄새가 더 난다고 할까나. 그래서 오히려 좋다.


fiesta! 친구들이 놀러오면 거실은 이렇게 변신한다.


 스페인에서 혼자 살게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집에 마음대로 친구들을 데려와 같이 놀 수 있다는 점. 내가 만든 요리를 대접할 수도 있고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수다를 떨다가 헤어질 수도 있어서 좋다. 다만 옆집 아저씨가 조금 까칠하신 편이라 늦게까지 큰 소리로 떠들고 노는 진짜 fiesta를 하기엔 무리가... 벌써 한달새 몇 번이나 한소리 들었는지 모르겠다.

화장실 창문을 열면 이런 이국적인 풍경이!


 우리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곳은 다름아닌 화장실 창문! 집앞 골목 건너편으로 마드리드 교통국과 다른 정부시설을 겸하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외관이 무슨 성채처럼 되어있어서 아주 멋지다.

주거지역이라 밤시간엔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집 앞 골목.


 마드리드의 심장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로인 까스떼야나(castellana)와도 가까워서 저 멀리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인 베르나베우 경기장까지 보일 정도. 이른 새볔 화장실 창문으로 먼 동이 트는걸 지켜보는 것도 꽤 기분좋은 일이다.



해가 잘 드는 시간엔 영락없이 빨래들이 내걸린다.


 내 방 창문은 반대쪽 중정으로 나 있어서 길가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중정이 꽤 규모도 있고 또 집이 5층(한국 층수로 6층)인지라 하루종일 해가 참 잘 들어서 좋다. 이렇게 해가 쨍한 날에는 여기저기 빨래를 너는 손길로 분주해지곤 한다.



IKEA에서 이것저것 세간들을 사온 날. 비로소 내 방이 제 모습을 찾았다.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IKEA 매장에서 침대시트랑 이불, 스탠드, 이것저것 필요한 세간을 좀 사오니 비로소 방이 좀 예뻐졌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내 방. 침대에 누우면 잠이 정말 솔솔 온다...




아이 예뻐라.


 한국에서는 생각치도 않았던 러그까지 깔고. 가난한 유학생의 신분만 아니면 더 이쁘게 액자도 걸고 꾸미면서 살고 싶지만 지금 이정도 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든다. 하하하.


이사하는 날에는 집들이 선물로 작은 화분을!


 요 앙증맞은 화분 세 개는 이사오는 날 우린이가 집들이 선물로 해준건데. 정성을 다해 키우고 분갈이도 해줬건만 요새는 시들시들하다. 아무래도 요즘들어 일교차가 하도 심하고 그래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잘 키우고 싶었는데 쩝.



방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 할머니의 푸짐한(?) 웃음을 보라!


 내가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형윤이도 바로 계약하고. 지난주에 마지막 남은 한 방에 수진이까지 들어오면서 일곱개의 방은 모두 주인을 찾았다. 

 시원시원한 성격과 예쁜 외모의 스페인 친구 jimena, 강해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순수하고 착한 성격의 독일 친구 Alex, 늘 유쾌하고 장난끼 넘치는 독일 친구 Vicete, 프랑스령 리유니온 섬에서 온 우리집 공식 수석 주방장 Florent, 그리고 형윤이와 마지막으로 들어온 수진이까지. 각기 개성도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인 일곱명이지만 그래서 한 집에서 살아가는게 더욱 반가운 친구들이다. 이상으로 우리집 소개 끝!

전에 그려둔 내 방. 실제론 그림보다 조금 더 크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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