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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집중에 나의 집은 어디에...


 공항에서 짐을 찾아 출국장을 나오는 길. 교환학생으로 머나먼 외국땅을 처음 밟는 그 순간,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는 뭘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일, 언어를 빨리 익히는 일, 익숙치 않은 음식에 입맛을 맞추는 일, 그 무엇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당장 이 곳에서 자리를 잡고 6개월, 혹은 1년간 살아갈 집을 구하는 일. 애초부터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다면야 신경쓸 필요도 없지만 당장 현지에서 집을 구해야 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기숙사 보다는 시내 한복판에서 외국 친구들과 살 부딛히며 살아가는 편을 훨씬 추천한다. 처음엔 집 구하기가 다소 힘들 수도, 또 살다보면 불편한 점도 있을 수 있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을 매일같이 배우고 즐길 수 있기 때문.

이데알리스따, 집 찾는 이들의 친절한 친구


 스페인에 교환학생을 와서 단 한번이라도 집을 구해본 경험이 있다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사이트, 이데알리스따(idealista.com). 쉽게 말해서 인터넷 쇼핑하듯이 집이나 방을 사고파는데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는 꽤 편리한 곳이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난 단 두 곳만 보고는 하루만에 후딱 계약을 해버렸다. 반면 함께 집을 구하러 다니던 두 친구들은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들마냥 마드리드 여기저기를 몇 일에 걸쳐서 휘젓고 다니더라. 계약을 먼저 마치고서도 계속 같이 다녔기에 그들의 길고도 험난했던 집 구하기 여정을 소개해볼까 한다.

처음엔 전단지에서 부터 쉽게 출발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고 딱 하루 지나고부터 본격적인 집 구하기 작업에 착수했다. 애초에 한국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집은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후에 발로 뛰며 구할 생각이었다. 보통 에라스무스나 교환학생들을 보면 도착해서 호스텔에서 집을 구할 때 까지 머무는 반면 나랑 우린이는 airbnb.com 사이트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내 집처럼 쓸 수 있는 곳을 일주일간 예약하고 왔다. 덕분에 집 구하기가 한결 수월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마드리드에서 집 구하기 대장정의 첫 출발지는 학교 안에 있는 ciudad universitaria 역 앞 게시판이었다. 전날 마르따와 학교 구경을 와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단지를 본 기억이 나서 무작정 찾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을 구하겠다는 의지만 가득했을 뿐 당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건지 감이 잘 안왔었다. 게시판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전단지들 중에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 역사적인(?) 집주인과의 첫 통화를 시도했다. 물론 당연히 스페인어로... 허둥지둥 더듬거리고 대답하기를 반복한 끝에 오후에 집을 보러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기세를 몰아서 두번째 통화도 도전. 첫 번째 집에 이어서 조금 더 늦은 오후에 방을 구경하기로 했다. 위 사진에 있는 집이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두 번째 전화한 저 집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그 집이다.

 참고로 전단지에 써있는 내용을 간단히 해석해보면...

[방 세놓습니다]

- 지하철 Nuevos ministerios역, Cuatro caminos역 바로 옆
- 공항까지 지하철로 한방
- 집 바로앞에 버스 정류장 있음
- 집 가까이 백화점(el corte ingres) 있음
- 5층(한국층수로는 6층)
- 가구 완비
- 인터넷 완비
- 근처에 체육시설(공원) 있음

430유로


 한국에서 흔히 보던 전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전단지들도 비슷한 편. 여담으로 결국 저 전단지에 나온 그 집에 벌써 한달 넘게 살고있는 입장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전단지 속 내용엔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겨우 집 두 곳을 보고는 계약한게 당시만 해도 조금 불안불안 했었는데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심지어 지하철 Cuatro caminos역 출구는 대문에서 겨우 10초거리일 정도로 가깝고 가구와 인터넷도 잘 되어있다. 당연히 집 바로 옆에 엄청 큰 조깅트랙과 공원, 골프연습장과 풋살, 테니스 등을 위한 시설도 갖춰져 있다. 우리집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직접 전단지를 붙여서 방을 쉐어할 친구를 찾기도 한다


 다시 집구하기 대장정으로 돌아와... 어쨌든 집구하는건 이렇게 다짜고짜 집주인한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고 보러가면 된다. 스페인어가 조금 부족해도 몇 번만 해보면 대부분 비슷한 표현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금새 익숙해진다. 그렇게 전화걸기에 조금씩 적응되다보면 길가다가 전단지만 보여도 눈에 불이 번쩍 할 정도! 물론 내가 그런건 아니고 곁에서 지켜본 두 친구들이 그랬다는 얘기...

SE VENDE, SE ALQUILA


 스페인은 요즘 유럽 경제 위기와 맞물려 그리스, 이탈리아와 함께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마다, 혹은 상가마다 se vende(팝니다)라고 붙은 전단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꼭 게시판이 아니더라도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se vende, 혹은 se alquila(세 놓습니다)라고 써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일단 집을 보기전에 주변 동네가 어떤지부터 볼 수 있기때문에 유리한 면도 있다. 하지만 기간이 어찌되었든간에 한동안은 스페인에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경제가 하락세인건 그닥 반갑지 않은게 사실이다.

역사적인 첫 번째 집구경!


 오전에 전화걸어서 첫번째 약속을 잡았던 집에 찾아갔다. 이때만 해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게다가 난 한국에서도 내 발로 뛰어 집을 구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살짝 떨렸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집주인 아줌마를 따라 들어가서는 방이랑 부엌, 욕실등을 차례로 둘러보고는 가격을 듣고 나오면 된다. 사실 첫번째 본 이 집도 꽤 마음에 들었는데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그닥 깨끗한 느낌이 안들었다. 일단은 첫 번째 집이니 공부하는 셈 치고 hasta luego라고 인사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인터넷과 전화만 있으면 부동산에 갈 필요도 없다


 이때부터 집 찾는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집주인이랑 전화하는 것도 알았고, 집을 보러가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뭘 봐야 하는지도 알았으니 최대한 많은 집을 여러 동네에 걸쳐 둘러보고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일만 남은 셈. 맨 처음 잠깐 언급했던 이데알리스따 사이트에서 간단히 사진과 함께 집을 보고는 마음에 든다 싶으면(사실 마음에 별로 안들어도 그냥 가보면 된다) 전화를 걸어 곧바로 약속을 잡으면 된다. 보통은 그날 바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연달아 약속을 잡는 것도 가능하다.

딱 두 번째 본 집에서 내 마음은 굳어버렸다


 그사이 난 오전에 전화로 약속했던 두 번째 집을 보러 왔다. 총 일곱명이 함께 살고 부엌과 욕실 두 개를 같이 쓰는 집(일반적으로 교환학생이나 에라스무스들은 이렇게 방만 각자 쓰고 공동공간을 쉐어하는 piso compartido에서 살게 된다)이었다. 건물도 새로 지은듯 깨끗하고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을것 같았다. 사실 방을 보자마자 딱 마음에 들었지만 겨우 두 번째 보는거라 확신이 서진 않았다. 집주인 할머니한테는 나중에 다시 연락주겠다고 말씀드리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려는데 뭔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아직 학기 시작 전이라 언제 방이 나갈지도 모르고(실제로 내가 나오는 그 순간에도 다른 학생이 또 집을 보러 왔었다) 다른 집을 더 둘러봐도 이만한 가격에 이런 집을 못 찾을것 같은 직감(?) 같은게 들었다. 결국 집 앞 맥주집에서 생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는 딱 5분만 고민하기로 했다. 맥주를 다 마실 무렵 나의 마음은 이미 계약 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그렇게 난 집을 구하러 돌아다닌지 만 하루만에, 정확히는 두 번째 본 집에 깔끔하게 계약해버렸다. 

 방금전 저녁때 10월달 방세를 내고 왔으니 벌써 이 집에 산지도 한달이 조금 넘었다. 그때만 해도 너무 성급하게 계약한건 아닐까, 뭔가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쓸데없이 고민이 많았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과감히 잘 선택한것 같다. 역시 직감이라는게 있는걸까.


집주인이 아니라 지금 살고있는 다른 친구가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이제 내 집은 해결이 되었으니 마음편하게 두 친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만 남았다. 남자와 여자의 성격차이인지는 몰라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결정해버린 나와 달리 두 친구들은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집을 보러 다니더라.

 

 교환학생으로 마드리드에 와서 집을 구할때 크게 고려해야할 부분이 몇가지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건 당연히 방값. 일반적인 piso compartido가 300~500유로 사이로 나오게 되는데 동네에 따라, 혹은 집의 상태에 따라 가격대가 조금씩 다르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보러 다니고 시세에 감을 잡는편이 좋다. 또한 방에 빛이 얼마나 잘 들어오는 지, 가구는 완비되어 있는지, 화장실과 부엌은 몇 개고 상태는 어떤지, 같이 사는 친구들은 몇 명인지 등등... 뭐라고 딱 잘라서 결론짓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느꼈던건, 가격이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슬슬 집 구하기에 도가 터가는 두 여장부...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특별히 학교에 갈 일도, 해야할 일도 없기 때문에 거의 하루 일과가 집 찾기로 시작해서 집 찾는 걸로 끝나곤 했다. 어쩜 그렇게 지치지도 않는지... 뒤에서 따라다니다 보면 '하우스 헌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막무가내로 전화해서 집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그렇게 몇 일을 보고 다니다보니 이제는 집구하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다른 집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se vende 싸인만 보면 조건반사 하듯 전화기를 꺼내드는 그녀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 마무리...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어딘가 모르게 위엄 마저 느껴진다.


그녀들의 집 찾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다음날 아침에도, 또 그다음날 아침에도 집 구하기는 계속됐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이런 생각마저 든다. 얘들이 혹시 집을 구하려고 이러는게 아니라 집 구경 다니는 일 자체에 재미를 붙인건가...할 정도. 그렇게 몇 일에 걸쳐서 총 30군데 가까이 돌아봤다. 마드리드 관광은 따로 안했지만 집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관광지가 아닌 진짜 마드리드 구석구석을 꼼꼼히 돌아보게 된다. 참베리, 떼뚜안, 센트로, 몬끌로아, 살라망까, 고야... 집주인이랑 약속을 잡고 구경할 집을 찾아갈때도 길(calle)이름과 번지수로 지도에서 찾아봐야 하기 때문에 금새 마드리드 지리에 익숙해졌다. 몸은 피곤해도 의외로 유익한 면이 많았달까.







이렇게 세면대나 샤워실이 방에 딸려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집 주인이 함께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순수하게 학생들로만 쉐어하는 집도 있고, 여자만 받는다는 집들도 자주 보인다. 개중에는 집주인이 강아지를 키워서 함께 사는 집도 있었고, 회전계단을 따로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도 있었다. 집을 구하는 며칠 동안 마드리드 지리를 속속들이 익힘과 동시에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뭘 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린이는 이 방에 들어오기로 결정!


 결국 오랜 여정 끝에 우린이도 살 집을 정했다. 아직 형윤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하이파이브 하는 사진까지 찍어뒀다.


어서오세요! 한대리 부동산입니다


 마지막까지 쉽게 결정을 못내리던 형윤이도 며칠 뒤 마침내 집을 구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그 누구보다 오래 찾아보고 많은 집을 돌아본 그녀였건만 결국 짐을 푼 곳은 지금 내가 사는 방의 맞은편 방. 난 겨우 두 번만에 이 집을 계약했고, 형윤이는 30여 개에 달하는 집을 둘러보고서 결국 다시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좌충우돌 참 길었던 여정 만큼이나 재미있는 결과다.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 셋은 각자 마드리드에서 보금자리를 틀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긴 시간을 투자한 만큼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간에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 셋은 각자의 방, 각자의 집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하루하루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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