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이었지만, 그늘 한점 없는 마라도에서는 말 그대로 햇빛과의 전쟁이었다. 카트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결국, 다시 나오는 배에서는 30분 정도 푹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모슬포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경. 점심도 느즈막히 자장면 한그릇 먹은게 전부라 허기가 졌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사이 게스트 하우스'까지는 어떻게든 도착해야만 한다. 끼니 걱정은 일단 짐이라도 좀 풀러놓고 다시 하기로 했다.

해안가에 우뚝 솟은 산방산은 참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참 많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저마다 규모도, 개성도 다 달라서 골라 묵어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게 또 게스트 하우스의 위치다. 제주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어느쪽 바다를 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혹은 한라산에 얼마나 가깝고 먼지에 따라서 풍경도, 기후도 크게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자연스럽게 게스트 하우스들도 저마다 있는 위치에 따라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게 되고, 찾아가는 길에서 내내 어떤 곳일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사이 게스트 하우스는 제주도 서남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근처에는 기이한 모습의 '산방산'과 '송악산'이 주로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산방산에는 온천도 있어서 여행자들이 묵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하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길


 마라도행 배를 탔던 모슬포항 부터는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오면 길가에 표지판을 보고 찾아갈 수 있다. 거리는 얼마 안되는 길이지만 아직 술도 덜 깬것만 같고, 마라도에 다녀오면서 급격하게 지쳐버렸다. 페달을 한번 돌릴 때 마다 온 몸 여기저기 삐그덕대며 아우성을 친다.

오르막에서는 자전거도 지쳐버린다...에휴


 설상 가상으로, 사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이런 오르막까지 있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오르막을 넘자마자 바다를 향해 뻥 뚫린 기가막힌 내리막과 함께 게스트 하우스가 나온다.
 맑은 날 제주의 태양은, 오후 6시가 넘어갈 무렵에도 계속 따갑다. 자전거를 타고 갔는지, 내려서 끌고 갔는지 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걸 먹어야지!'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다 했다.


드디어 오늘의 숙소, 도착!


 드디어 사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그 규모가 꽤 컸는데, 1층은 남/여 도미토리 숙소, 2층은 북카페/식당/커피숍, 3층은 개인 객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가 하루 묵어갈 방은 물론 1층 도미토리. 다른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리 북카페와 커피숍이 함께 있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다.





여느 게스트 하우스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어제 묵었던 '마레 게스트 하우스'가 떠들썩하고 북적거리는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조용하게 사색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게다가 창문만 열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지니,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았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 아저씨는 커피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란다. 직접 로스팅을 하고,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서 팔고 게셨는데 판매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커피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향을 음미하는걸 더욱 즐기시는 멋쟁이셨다. 때문에, 이곳 게스트 하우스에는 여행자들 뿐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어우러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요새는 '더치 케냐'가 맛있다면서 손님들에게 권하시는데, 한잔 마시고 싶은걸 꾹 참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강행군이 계획되어있기 때문이다. 술도 안되고, 커피도 안된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문을 나섰다.



오늘의 메뉴는 해물 전골과 고등어 구이!


 한산한 바닷가라 적당히 밥먹을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몸도 마음도 지친터라,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있는 음식점 아무데나 일단 들어갔다. 힘들었던 만큼, 맛있는 음식으로 체력보충은 필수! 조금 가격이 쎄긴 했지만 해물 전골을 먹기로 했다. 함께 나온 고등어 구이까지 해서 순식간에 밥 두 공기를 비웠다. 역시...맛있다!



커다란 화분들이 다 쓰러질 정도로 간밤에 비가 내렸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돌아와, 열시가 채 되기도 전에 자리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이곳에서도 밤이면 함께 술도 한잔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던데 이미 눈을 떴을땐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간밤에는 비가 억수로 내렸다. 천둥 번개가 너무 심해서 깜짝깜짝 잠에서 깰 정도였다. 비가 그렇게 내렸으니 밖에 걸어둔 빨래들은 고사하고, 방 안까지 비가 들이쳤다. 꼼짝없이 오늘은 비를 맞으며 가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서서히 구름이 걷히더니 다시 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4박 5일 내내 이렇게 날씨운이 좋았다. 밤새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다가도, 아침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하늘이 다시 맑아지곤 했다. 오늘 라이딩은 어제보다 수월할 수 있을까...(계속)

이런 오르막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때는 몰랐다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