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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기라도 했던걸까.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에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토스트를 준비해 놓았지만 쓰린 속에 그런 밀가루 음식이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배를 움켜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아침 식사를 하시던 형님 한분이 고맙게도 손수 끓인 김치찌개를 같이 먹자며 권하셨다! 염치 불구하긴 해도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라도를 지나 산방산까지. 어제 정도 거리만 타면 쉽게 모슬포항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째 저녁이 될 때 까지 술이 깨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제의 즐거웠던 만남을 뒤로하고 짐을 챙겨 게스트 하우스를 빠져 나왔다.


페달이 나를 돌리는건지, 내가 페달을 돌리는건지...


 원래 일정대로였으면 차귀도를 바라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모슬포항 까지 달려야 하겠지만, 몸상태를 생각해 일단 일주도로를 따라 차귀도까지는 질러 가기로 했다. 중간 중간 언덕이 있긴 해도 그리 경사가 급한 편은 아니었는데 자전거가 너무 안나간다. 아무래도 술 때문에 다시 근육의 긴장이 다 풀어져버린 모양이다. 우리 둘다 서로 한마디 말도 없이 계속해서 페달만 밟았다. 아, 꿈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몽롱했다.


아름다운 제주의 하늘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차귀도의 풍경


 얼마나 달렸을까. 다시 차귀도 쪽 해안으로 진입하는 길을 따라 해안도로에 들어왔다. 어제도 날씨가 참 좋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하늘이 파래보인다. 어제 만났던 해질녘의 차귀도와는 또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 위로 융단처럼 깔린 푸른 잔디 또한 너무 앙증맞다.

 정오에서 오후 3시 정도까지는 여름철 자전거 여행자가 피해야할 위험한 시간대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제주의 한낮은 타이어도 녹여버릴 기세로 이글이글 타오른다. 출발을 늦게했기 때문에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한낮에도 계속 달려야만 했다. 근처 식당에 들러 물통에 물을 채우고 다시 출발! 2시까지는 모슬포항에 도착해서 마라도행 배를 타야만 한다.

너희들도 지쳤구나...


벌써 서귀포라구?


에라 모르겠다! 일단 기념 촬영부터~ㅇ~


 열심히 달리던 중, 길가에서 재미있는 표지판을 하나 발견했다. 아직 제주도 서쪽 해변을 따라 달리는 중인데 벌써 서귀포시라는 안내가 있는게 아닌가! 아마도 제주도의 행정구역상 제주시와 서귀포시 둘로 나뉘여 있기 때문인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괜히 멀리까지 온듯한 착각이 들어서 기념촬영부터 해버렸다. 기분이 좋기는 한데 그래도 아직 모슬포항까지 갈길이 멀다.



마라도행 배를 탈 수 있는, 모슬포항 대합실. 자전거는 마라도에 들고갈 수 없다.


 오후 2시. 더이상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더 타는게 무리라고 느껴질 정도의 더위. 예정대로 우리는 모슬포항에 정확히 도착했다. 마라도에 들어가는 정기 유람선은 이곳 모슬포에서 출발하는 배와, 송악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는데 뜨거운 오후 시간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모슬포에서 타기로 했다. 왕복 뱃삯은 15400원으로 생각보다 조금 비싼 편이다. 배는 매 1시간 정도 간격으로 있으니, 마라도에 머무르는 시간을 2시간 정도로 잡아 표를 끊으면 딱 적당할듯 싶었다.




아...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마라도로 향한다!


 드디어 마라도행 배에 올랐다. 사실, 제주도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마라도에 가지 말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었다. 그건 지난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 조그만 섬에 뭐 볼게 있다고 비싼 배를 타면서까지 들어가냐고 한소리를 한다. 하지만... 마라도는 꼭 뭔가를 보러 가는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 어쩌면 단순한 상징성 때문에 찾게 되는 곳일지도 모르지만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두 발로 밟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자장면은 맛이 없으니 절대 먹지 말란다.
 두 시간이나 있으면 지겨울테니 짧게 있다가 나오란다.
 해가 뜨거운데 피할곳이 없으니 적당히 쉬면서 걸으란다.

 누가 뭐라하든 상관없다. 난 지금 늘 동경해오던 마라도를 향해 떠난다! (계속)





오늘의 코스 리포트
(마레게스트하우스-차귀도 해변-해안도로-모슬포항-마라도-송악산-사이게스트하우스)

협재에서 모슬포항 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제주시에서 많이 멀어져서 그런지 도로변에 가게나 화장실이 잘 없다는 점을 미리 생각해서 계획을 짜는 편이 좋겠다. 차귀도 근처의 수월봉이나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오는것도 좋지만, 수월봉 근처에서 오르막이 좀 심한 편이다. 모슬포항에서 마라도에 다녀온 뒤,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송악산을 넘어가게 된다. 이때도 오르막이 좀 있는 편이라 라이딩 후반까지 체력 안배를 잘 해둘 필요가 있다.



오늘의 라이딩 리포트
2010년 8월 4일 / 2일차

주행거리 : 34.32 km
주행시간 : 2시간 3분
최고속력 : 38.7 km/h
평균속력 : 16.6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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