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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길이 참 좋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나는 섬이다. 조금이라도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노면 상태에 따라서 자전거가 나가는 느낌이 다르기도 하고 속도계 수치상으로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재미 말고 또 제주도 여행의 매력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게스트 하우스 투어.' 흔히 게스트 하우스라고 하면 외국 여행을 가서 사용하는 숙소 쯤으로 알고 있지만, 제주도에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가 일주 도로를 따라 섬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첫날 숙소가 되어줄, 마레 게스트 하우스의 전경


 첫날 숙소로 우리가 선택한 곳은 협재/금능에 위치한 '마레 게스트 하우스'다. 1132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가 한림공원쪽 해안도로로 빠지면 한림공원을 지나 1km 못미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 제주도 일주 코스를 따라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지만, 3박4일 혹은 4박5일등의 일정에 맞추어 숙소를 배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첫날 숙소는 이쯤 위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마레 게스트 하우스는 언제나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게스트 하우스 1층에는 이렇게 넓은 홀이 있어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대부분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남자/여자가 분리된 도미토리식의 침실이 따로 있고 다함께 어울려서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라운지 같은 공간이 있는 형태다. 그저 대학 동기 사이인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제주도에는 이런 형태의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가 매우 활성화 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또 한가지 장점은 바로, 저렴한 숙박료. 저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1만원~1만5천원이면 1박을 할 수 있고, 저녁 바베큐 파티는 1만원만 더 내고 참석하면 마음껏 고기도 먹고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한국을 여행하고 있지만 마치 외국에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드는 즐거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나름 깔끔한 침실의 모습


 1층이 그렇게 친목과 이야기의 공간이라면, 2층에는 아늑한 침실이 마련되어 있다. 방마다 6개~8개 정도의 침대가 있어서 기숙사 형식으로 함께 쓰도록 되어있는데, 처음 방에 들어갈때만 해도 서먹한 사이지만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나면 어느새 다들 형님 동생 사이가 되어있다. 이 역시도 제주도를 여행하는 묘미중에 하나가 아닐까.

차를 타고 일몰 투어 출발! 자리가 모자라서 렌트카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게스트 하우스들은 저마다 오름 투어, 일출 투어, 일몰 투어 등의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 마레 게스트 하우스의 경우에는 저녁 6시가 되면 다같이 일몰 투어를 하게 된다. 아무래도 제주도 서안에 위치한 특성상, 조금만 차를 타고 가면 바다 너머로 지는 태양을 마주칠 수 있었다. 따로 요금을 더 내지 않아도 되고, 같이 간 사람들끼리 더 친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참가하는게 좋다. 특히 나처럼 자전거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경우는, 자전거로는 오르기 힘든 언덕이나 조금 멀리 떨어진 스팟까지 두루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또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찬스가 될 수도 있겠다.


지는 태양을 뒤로하고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린다는 제주에는 풍력 발전기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해 선인장 마을을 거쳐 서쪽 해변 풍력 발전소 단지에 도착했다. 스텝 아저씨가 차를 타고 가며 발전기 날개 한개의 길이를 퀴즈로 냈는데 아무도 정확히 맞추질 못했다. 정답은 28m.
 바닷가에 서있으니 바람이 꽤 세게 불어와 얼굴을 스친다. 하지만 발전기 날개는 미동도 할 생각을 않고 서 있었다. 제주도에서 이정도 바람은 바람 축에도 못낀단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센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발전기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바다위로 우뚝 솟은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대관령 목장에서나 보던 커다란 바람개비들을, 이렇게 바닷가에서 맞닥뜨리니 묘한 기분이 든다. 아직 첫날이라 제주도가 낮설기만 한데... 다시 차에 올라서 남쪽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원래 계획에 의하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려 했던 해안도로지만 오늘 먼저 둘러본 덕에 내일 마라도에 들를 시간을 벌었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 시간이 늦어서 아쉽지만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더 달려서,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도착했다. 차귀도가 훤히 보이는 바닷가 자리잡은 이곳은 지금도 실제 미사가 드려지는 장소라고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문틈으로 엿보니 정말 사람들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벌써 게스트 하우스를 나선지 시간이 꽤 흘른 모양이다. 어느새 하늘이 조금씩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오늘의 유일한 일몰 사진! 따로 망원 렌즈가 없어서 해가 콩알만하게 나왔다


 차귀도는 영화 '이어도'에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제주도 사람들의 이상향이기도 한 '이어도.' 어딘가 신비로운 모습을 한 차귀도는 정말 이어도에 닮아 있는것 같기도 했다. 일몰 투어랍시고 길을 나섰지만, 오늘 찍은 일몰 사진은 달랑 이거 한장이다. 구름이 많아서 그런지 차를 세우자 마자 잠깐 해가 고개를 내밀었지만, 다시 돌아갈 때 까지 볼 수 없었다.



차귀도가 한눈에 보이는 포인트에서 만난 한 사진가


 우리가 차를 세웠던 곳이 나름 일몰 사진의 '포인트'였나보다. 먼저 오신 한 분께서는 해가 지는 차귀도 쪽으로 튼튼한 삼각대에 중형 카메라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고 계셨다. 아마도 장노출을 하던 중이었던것 같은데, 잘 모르는 우리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이 자꾸 옆을 얼쩡거리니 꽤 불안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라도 누를 끼치게 될까봐 얼른 주변 사람들한테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귀뜸을 해줬다. 장노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사진인지 잘 알기에...





수월봉에 오르니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온다


 일몰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수월봉.'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작은 언덕인 이곳은, 차귀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일몰을 감상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도 길이 꽤 험했다. 자전거를 타고 왔었더라면 올라가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것만 같다.
 비록 구름이 많아 깨끗한 일몰을 볼 수는 없었지만 높은 곳에 오르니 바람이 아까보다 한층 더 세진 느낌이다. 바다 내음이 살짝 섞인 저녁 바람은 더운 날씨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일몰 투어가 끝나고 돌아가 곧바로 저녁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졌다. 일주도로 초반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인 만큼 다들 목적지도 다르고 교통 수단도 달라서 이야기 하면 할수록 분위기는 고조되고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술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계속)

"아 취한다 취해, 내일도 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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