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계속 펜을 굴려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은 누구에게나 한번 쯤은 일탈을 꿈꾸게 만든다. 얼마 후, 인터넷을 기웃거려가며 가장 짜릿한, 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일탈은 뭐가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살며시 펜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어느새 모니터 앞에 바싹 다가가 앉아 비행기표를 찾아보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은 그렇게 일탈을 꿈꾸며 시작된다.
 인도를 여행하며 서양에서 온 한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차림새만 봐도 오랜 여행의 연륜이 묻어나는 진짜배기 배낭여행자였다. 이번 여행도 벌써 1년째 계속되는 중이란다. 괜시리 주눅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오랬동안 여행을 하고 있냐고. 돌아온 그의 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하죠.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일상을 만드려고 여행을 합니다'

결국 여행지에서도 먹고 자는게 가장 큰 고민이다


 정말 그랬다. 여행은 결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만은 아닌 것이다. 낯선 곳에 가더라도 그곳엔 그들만의 삶이 있고 일상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는 늘 즐겁고 새로움의 연속이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들의 일상,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잠시 함께 했던 기억일 뿐이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떼울 걱정을 해야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오늘밤은 또 어디서 자야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준비해간 돈마저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계부를 써가며 골머리를 썩히는 일도 생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늘 하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멋진 유적지나 풍경보다는 먹었던 음식, 몸을 기댓던 숙소가 더 오래 기억이 나는가보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잔지바르였지만, 백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하던 추억보다는 열대야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름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감자튀김을 먹던 기억에 웃음이 먼저 나오는걸 보면 말이다.

포로다니 정원은 해가지면 순식간에 야시장으로 변신한다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항구 옆, 반듯한 대리석과 잘 다듬어진 나무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이곳은 '포로다니 정원'이다. 핫팬츠 차림으로 귀에는 아이폰을 꼽은 금발의 서양 여자들, 강아지를 끌고 나와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탄자니아의 북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가 지고 석양이 드리울때 쯤, 까만 피부색때문에 더욱 밝아보이는 요리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테이블을 들고 나무 밑을 메우기 시작한다.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가장 매력적인 볼거리인 야시장이 차려지는 풍경이다.

칠흑같은 골목, 빛이 있는 곳이면 으레 사람들이 모여있다


 잔지바르는 섬이라 그런지 전기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라 할지라도 대부분 밤이 되면 전기가 나가 버리고, 자체 발전기를 돌려서 밤새 선풍기를 틀어주는 고마운 숙소는 영락없이 가격이 비싼 편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인도의 바라나시 만큼이나 꼬불꼬불 복잡한 스톤타운의 골목길은 그래서 더욱 위험천만하다. 조금 외진 곳에 짐을 풀어놓은 덕분에 항구 근처의 야시장까지 찾아가는 길은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사람들만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골목은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칠흑이다. 애시당초 작은 골목은 표시조차 되지 않은 허술한 지도 한장을 들고 나섰지만, 그마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스톤타운의 골목길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해가 져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온때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길을 찾고 있는데 옆으로 따르릉거리며 자전거 한대가 지나간다. 세상에. 이렇게 어두운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니, 기인열전이 따로없다.

어두운 조명아래 분주한 야시장의 풍경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야시장. 변변한 가로등 하나 없이 테이블마다 켜진 작은 석유등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바쁘게 움직이는 요리사의 손놀림과 다 찌그러진 접시를 들고 바쁘게 음식을 입에 넣는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북적이는 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낮에 봤던 깔끔한 정원이 정말 이곳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어느새 풍경은 너무나 아프리카 답게 변해 있었다.

잔지바르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그 피자


 잔지바르 스톤타운 야시장의 스테디 셀러는 바로 '잔지바르 피자'다. 인도의 다양한 향신료와 레시피, 거기에 탄자니아의 신선한 재료와 손맛이 더해져 먹거리가 참 많은 잔지바르지만 국적도, 유래도 알 수 없는 요상한 모습의 '피자'가 스테디 셀러라니,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한 끼도 못먹었다. 피자가 아니라 그 무슨 음식이라도 집어 삼킬 수 있을것만 같았다. 한바퀴 얼른 시장을 둘러보고는 1500실링짜리 비프 피자를 하나 시켰다.

미리 숙성시켜 놓은 도우를 꺼내서...


아주 얇게 문질러 펴준 뒤...


잘게 썰은 야채와 고기, 각종 양념을 올리고는...


...이렇게 지글지글 하면


드디어 잔지바르 피자 완성!


 피자라기 보다는 빈대떡과 군만두의 중간쯤 되는 음식이랄까. 치킨, 소고기, 양고기, 야채 다양한 속으로 도우를 채워 기름에 구워낸 잔지바르 피자에는 매콤한 칠리소스가 얹어진다. 사진은 영 볼품없게 보이지만 항구에 앉아 밤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입 베어물면 정말 끝내준다. 매콤한 소스에 코끝이 찡해지지만 서양 여행자들 입맛에도 잘 맞는 모양이다. 멀리 식당까지 갈 필요없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곳 야시장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배가 좀 차고나니 이제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좀 생겼다. 형형색색 다양한 음식도 볼거리지만 어두운 불빛아래 쉼없이 움직이는 요리사들의 모습도 참 재미있다. 그리 거창하지는 않은 요리들이지만 역동적인 그들의 손짓 하나하나를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이 많은 요리들을 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야시장은 늘 즐겁다


 잔지바르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 만큼이나 눈과 혀를 즐겁게 하는 맛있는 요리들이 테이블마다 한가득이다. 가볍게 잔지바르 피자로 배를 좀 달래준 뒤, 문어나 양고기 꼬치, 케밥을 입맛대로 골라먹고는 사탕수수 주스 시원하게 한잔 딱 마시면 이보다 더 행복할수는 없다.
 사실 정식 레스토랑에서 먹는 밥에 비하면야 야시장에 음식들은 길바닥에서 파는 불량식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리들을 500실링~3000실링(우리돈으로도 500원~3000원 정도)이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지갑이 가벼운 배낭 여행자들에게는 매일 찾아와도 질리지 않을 최고의 레스토랑이 되어주는 셈이다.

인도에서 자주 보던 사모사도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시장 한켠에는 인도에서 아침식사로 자주 먹었던 사모사도 보인다. 인도의 사모사와는 조금 다른 맛이었지만, 이름을 알고있는 음식을 멀리 탄자니아에서 만나니 한국음식이라도 본 것 처럼 반가웠다.
 인도문화와 함께 건너온 다양한 요리들과, 섬이라는 특성상 각종 싱싱한 해산물이 재료로 더해지는 잔지바르의 야시장은 말 그대로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다.
 실컷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행복했다. 이제 저녁식사는 해결했으니 급한불은 우선 끈 셈이고 다시 칠흑 같은 어두운 골목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 자는 일만 남았다. 올때는 낯설어서 좀 헤맸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정말이지 일상 그 자체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의 반복. 그리고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더  더 새로운 일상은 익숙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런 익숙함을 느끼는것 조차 즐겁고 행복하다는 사실. 어색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에 몸은 힘들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걸까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할지라도, 돌아와서 다시 그때를 떠올려가며 웃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먹었던 잔지바르 피자 한조각을 생각하면서 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여행이 늘 즐겁고 설레이는 까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계속)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