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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비행때문인지, 시차에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 잠에서 깬 후배녀석의 표정이 어째 시무룩하다. 오늘 하루쯤은 다르에스살람에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얼굴에 써 있는게 다 보이는데 짧은 일정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가 먼저 입에서 나온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찜통같은 공항 한 구석에서 서둘러 입국수속을 마치고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탄자니아는 따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갈 필요가 없는 국가다. 여권과 함께 50달러만 내면 즉석에서 비자를 발급해준다.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여유가 좀 생겨서 주변을 둘러본다. 조금은 어색한 공항의 풍경과 쉴새없이 들려오는 낯선 말들, 얼굴에 땀이 흐르는것도 모르고 마냥 신기해서 두리번거려본다. 그런데 어째 오히려 누런 피부의 나를 더 신기해하는 눈빛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하늘부터 올려다본다


 비행기가 점점 땅에 가까워지면 구름 아래 탄자니아의 푸른 초원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건 불안한 치안이나 위생상태, 풍토병, 강도 따위가 아니었다. 날씨, 날씨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도 마음껏 달려보고 싶고,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해변도 거닐어 보고 싶은데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여행을 망치면 어떡할까 하는 어쩌면 당연한 불안감이랄까.

걱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게 만드는 날씨정보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잠깐 확인해본 탄자니아의 날씨는 거짓말 안하고 딱 이랬다. 다행히, 여행이 끝날 때 까지 버스를 타고가며 소나기를 한번 만난 것 빼고는 늘 구름이 예쁘게 떠다니는 파란 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는게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탈이긴 탈인가보다.


피켓을 든 사람들은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기다려야 한다


 다르에스살람은 탄자니아의 옛 수도다. 수도 자리치고는 특이하게 바다를 끼고 탄자니아의 동남쪽에 치우쳐있는 도시다. 그런 지리상의 이유 때문이었을까, 현재의 행정상의 수도는 좀더 내륙지역인 도도마로 옮겨갔지만 이곳 다르에스살람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도아닌 수도가 되어 있었다.
 다르에스살람 국제공항은 그 규모가 꽤 소박한 편이다. 짐을 찾고 게이트를 거쳐서 출국장으로 나가려는데 어째 너무 밝다는 생각을 하며 따라 나가봤더니 그대로 공항 밖으로 이어진다. 길을 헤멜 필요도 없이 곧바로 옆에는 환전소와 택시 스탠드가 있다. 참 소박하면서도 명쾌한 공항 구조가 아닐 수 없다.

환전을 하고나면 얼른 물가에 익숙해지는게 우선이다


 출국장이 따로 없어서인지 나오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볼을 스친다. 간단하지만 강렬한 아프리카식 환영인사라도 받은 느낌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계절을 못따라가고 긴바지에 카디건까지 걸친 바보들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서둘러 화장실에 들어가 반바지와 반팔, 슬리퍼로 갈아신고 나오니 영락없는 현지인이다. 출국 전날까지도 하얀 설원에서 스노우보드를 즐기다 왔다는 후배녀석은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탄자니아의 화폐단위는 탄자니아실링(Tsh). 하지만 다르에스살람이나 잔지바르같은 대부분의 관광지는 US 달러와 탄자니아실링을 모두 받는다. 환율은 1달러에 1300탄자니아실링 정도. 달러대비 환율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비교적 물가를 생각하기에 편한 구석이 있다. 서둘러 환전을 마치고는 택시에 올랐다. 서둘러야지. 오늘은 이래저래 숨돌릴 틈이 없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렇게 서두르는건 잔지바르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서다. 다르에스살람 항구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3시간 정도를 들어가면 아프리카의 몰디브라 불리는 잔지바르섬이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랑 크기나 느낌이나 비슷하달까. 서양 사람들에게는 멋진 풍광덕에 휴양지로 많이 알려져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첫날부터 무리하기는 싫지만 차들이 빵빵거리는 대도시에서 첫날을 어영부영 보내기는 더욱 싫었다. 다르에스살람은 택시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걸로 만족하는 수 밖에.




인도를 너무 닮은 다르에스살람의 풍경


 다르에스살람과 잔지바르는 특이하게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탄자니아의 도시다. 원래 대도시를 여행하는데는 그다지 흥미가 없을 뿐더러 몇달전 다녀온 인도와 너무나 닮은 풍경에 신기함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느껴진다. 왠지모르게 머리속에 들어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이 한순간에 싸악 비워진 느낌이랄까.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시끌벅적 바쁘게 돌아가는 풍경이 골목골목 가득했다.


도로위에서 심지어 차량용 소화기도 팔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조금은 친숙한 릭샤도 보인다. 릭샤는 인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대중교통수단이다. 저 작은 오토바이 한대에 20명이 넘는 사람이 타는 곡예의 가까운 모습도 인도에서는 꽤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탄자니아의 릭샤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뜨거운 오후의 태양을 피해 운전사 아저씨는 낮잠을 즐기고 계셨다.
 공항에서 다르에스살람 시내까지는 20km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차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는 뻥튀기를 팔지만 이곳의 노상 장사꾼들은 한술 더 뜬다. 간단한 심심풀이 주전부리는 물론이거니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겐 별로 필요할것 같지 않은 계산기, 전자시계, 각종 공산품들을 마구잡이로 창문틈으로 밀어넣는다. 

드디어 포트에 내렸다


  몇번이나 되물어 확인한 끝에 무사히 항구에 내렸다. 항구라기보다는 조그만 선착장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있지만 주위로는 수많은 여행사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잔지바르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는지, 고속페리를 타고서도 3시간 가까이 가야 한단다. 가격은 일인당 35달러.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물가에 살짝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도 된다.

이곳에는 줄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표를 사고 선착장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려본다. 이제 겨우 탄자니아에 도착한지 1시간이 채 안되었는데 벌써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니 한달은 여행한 사람마냥 피곤이 가득해 보인다. 어느새 배가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줄을 선다는 개념이 별로 없는건 인도나 탄자니아나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새치기와 약은 속임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인파를 무사히 뚫고 나와 가장 좋은 자리에 짐을 풀고 앉았다.


깔끔한 객실 내부의 모습, 뒤에는 맥주를 파는 작은 바도 있었다


 배에 올라보니 생각보다 시설이 상당히 좋았다. 카디건을 도로 꺼내어 입어야 할 정도로 에어컨은 빵빵하고, 좌석 맨 앞에있는 대형 벽걸이 TV로는 영화 '이탈리안 잡'이 한창 상영하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표를 내밀며 새치기하던 사람들을 뚫고 들어왔는데 배 안의 풍경은 너무 점잖아서 나 역시 어리둥절하다. 어떤게 진짜 모습인걸까. 아무래도 좋다. 정신없는 다르에스살람의 거리를 벗어나 잠시 눈을 붙일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이내 길게 고동을 울리며 배가 출발하고,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나의 상상은 곧 파도처럼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끔찍한 배멀미와 함께하는 3시간동안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아무도 몰랐으니...
(계속)


이랬던 다르에스살람을 뒤로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찾아 잔지바르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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