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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길은 멀고 또 멀다. 직항편을 타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이집트의 카이로나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 정도가 전부고, 그 외의 지역은 대부분 환승을 통해서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입성이 허락된다. 문득, 요즘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하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프로젝트가 생각이 난다. 길고 긴 비행은 후덕한 인상의 튼튼한 체격을 자랑하는 김용만씨조차 지치게 만들 정도였으니...
 출국 2시간 전,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프리카에 간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카타르 항공에서 받은 공짜 티켓이 아니었다면 쉽게 마음먹지도 못했을 아프리카 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먼 거리 만큼이나 아직 마음의 거리도 멀기만 하다.

비행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불빛이 기내를 수놓는다

 
 좌석벨트를 착용하라는 작은 불빛이 일제히 점등되고, 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하늘위로 떠오른다. 인류가 하늘을 날게 된지도 벌써 한 세기가 넘어가지만 막상 구름 아래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애 마냥 기분이 들뜨곤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찍자며 자꾸만 나를 보채는 후배녀석에게 촌스럽게 뭘 그러냐고 한바탕 핀잔을 주고 나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창문에 머리를 딱 붙이고 앉아서 넋을 잃고 멀어지는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정말 출발이구나.

특별할 것 없는 기내식이지만 저 샐러드의 맛은 좀 특별했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을 거친 후 카타르 도하까지 날아간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아랍어로 가득한 모니터에서 14시간 20분이라는 숫자만 둥둥 떠다닌다. 출발한지 30분도 안되어 벌써 지루해 하고있는 사이, 어느새 첫번째 기내식을 서빙하는 스튜어디스들의 몸짓이 분주해진다.

간사이에서 이륙한 후 일식으로 제공되었던 기내식


 좌석의 반 이상을 텅텅 비운채로 1시간 반 여를 날아서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한시간정도를 멍하니 앉아 기다리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많이 타기 시작한다. 물대포를 쏘아가며 비행기를 청소하는 모습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두번째 이륙이다.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 기내식. 그새 일본풍으로 바뀐 기내식에는 각종 생선요리와 함께 모나카도 하나 제공된다. 기내식을 다 먹고 맥주한잔을 가볍게 마시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메카의 방향을 늘 알아야하는건 무슬림의 의무다


 잠들기 전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한가지 재미있는걸 발견했다. 좌석 앞에 마련된 모니터로 비행 정보와 함께 메카가 어느방향인지를 주기적으로 표시해주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무슬림이 많은 지역을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정보도 제공하는 모양이다. 하루 세번씩 메카를 향해 시간맞춰 정성스레 절을 올려야 하는 무슬림들의 지극 정성도 신기하지만, 오랜 비행중에도 신성한 의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행기 기내에서 메카를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카타르 도하의 밤공기가 뺨을 스친다


 이제는 좀 내려줘. 꿈속에서 외친 간절함이 통하기라도 한걸까. 드디어 길고 긴 비행을 마치고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다들 긴 잠에서 깨어나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기쁨도 잠시, 다시 또 비행이다


 다시 땅을 밟은 기쁨도 잠시, 네시간여를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조금 더 작은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카타르 도하를 출발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까지 향하는 비행기 안, 동양인이라고는 나와 후배녀석 둘뿐이었다. 이제 정말 아프리카가 가까워지기는 했나보다. 아직도 5시간을 더 가야 도착이지만 도서관에서 복사해온 론니 플래닛을 살며시 꺼내어 본다.

다들 지쳐버린 비행기의 풍경


 카타르까지 오는 내내 어두웠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한점 없는 아침이 환하게 밝아있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2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베낭을 둘러메고 시내 한복판을 헤메야 할게 분명하다. 미리미리 준비도 하고 생각도 해 놔야할텐데 괜히 마음만 조급해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침 시간이지만 다들 긴 비행에 지쳤는지 아직도 쿨쿨 자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어떤 사연을 가지고 다르에스살람을 찾는걸까 궁금해진다.

에티오피아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지도위를 날고있는 비행기. 아마도 에티오피아 상공을 날고있는 모양이다. 이제 다왔다. 배낭여행이 처음인 후배녀석은 벌써 여행을 마친 사람 마냥 지쳐서 투정을 부린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처음 밟아보는 낯선 곳에대한 호기심,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기대감.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들이 머리속에서 뒤엉켜 뭐라고 표현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감정을 '설렘'이라고 하는가보다.

여행의 설렘은 늘 그렇게 비행기와 함께 시작된다


 기체가 심하게 덜컹거린다. 착륙을 위해 구름 아래로 낮게 날고있는 비행기의 창밖으로 짙은 초록빛 풍경이 펼쳐진다. 장난감처럼 조그만 집들이 빼곡한 사이로 넓찍한 야자수들도 간간히 지나간다. 조금은 어색한 풍경에 심장박동이 더욱 빨라진다. 

 오후 2시. 활주로에 멈춘 비행기의 스피커로 스튜어디스의 마지막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현재 시간은 2시 15분, 기온은 32도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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