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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보! 맘보! 하쿠나마타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과장된 몸짓으로 나를 반가히 맞이해주던 그들. 적도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그들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 모든게 그립다. 짧은 일정이라 떠나기도 전에 아쉬움이 먼저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여운이 더 길었던 아프리카의 기억. 그 짧지만 뜨거웠던 10일간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정신없는 아프리카, 그래서 늘 즐겁다


 여행하며 사진찍기
 처음으로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보다 10년은 먼저 태어난 오래된 수동 카메라의 필름을 끼우고 첫 배낭여행길에 나섰을 때에는 사진의 '사'자도 모르는 말 그대로 애송이었던것 같다. 하루하루 필름을 새로 갈아끼우고 라벨을 붙여 정리하면서도 부담같은건 전혀 없었으니깐. 렌즈교환식 카메라라고는 하지만 50mm 단렌즈 하나를 끼우고 줄창 돌아다녔으니 똑딱이 카메라와 크게 다른 것도 없었다. 오히려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길어진 노출시간 때문에 마음편하게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버리고, 찍고 난 사진을 리뷰로 볼 수도 없으니 잘 찍혔을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돌이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안했던건 아닐까.

 포장을 뜯은지도 얼마 되지 않는 값비싼 dslr 카메라를 들고 북적대는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 서있으니 나도모르게 긴장을 하고 말았다. 흠집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바보같은 고민은 둘째치고,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좋은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괜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의 첫날 밤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런 생각은 까맣게 잊게 된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맞이한 첫날밤, 야시장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있는 나에게 어느 서양 여행자가 살며시 다가와 질문을 했다. 자기가 여행하며 만난 한국 여행자들은 왜그렇게 음식사진을 찍어대는지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단다. 그러고보니 비행기에서 먹었던 기내식들, 오늘 아침 탄자니아에서 처음 맛본 요리들, 야시장의 신기한 먹거리들, 어느새 나도 음식사진을 찍는게 거의 습관처럼 되어있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는 서양 여행자를 뒤로하고 잠시 셔터를 누르던 손가락을 내리고 생각에 빠졌다.
 음식은 내가 다른곳, 낯선곳에 와있다는 걸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1차적인 자극이다. 멋진 풍경도, 아름다운 사진도 좋지만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의 맛, 톡 쏘는 자극적인 향신료의 냄새만큼 오래, 또 강렬하게 기억되는것도 없다. 설사 늘 마시는 물이라도, 여행지에서만큼은 까딱 잘못 마셨다가는 한시간도 채 안되어 나를 화장실에 앉아있게 만드니 말이다. 나에게 천진난만하게 질문을 던졌던 서양 여행자의 눈에는 하찮아 보였을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여행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사진인 셈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여인들

 
 여로, 길을 걸으며

 10흘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적어도 큰 도시에서 만큼은 가이드북에 나올법한 랜드마크에 들렀던 기억이 없다. 잔지바르에서는 잠시 박물관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기 보다는 정처없이 길거리를 걷다가 뜨거운 태양에 지쳐 잠시 그늘을 찾아 들어갔던것 같다.
 '여로'라는 말이 있다. 즉 여행은 길, 여로를 따라 걷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찍는 가벼운 사진들은 내가 만난 사람들, 풍경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억, 내가 걸은 길에 대한 작은 흔적을 남기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진찍히는걸 병적으로 느껴질만큼 싫어한다. 한장이라도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다면 먼저 말을 건네고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지나쳤으면 몰랐을 그들의 목소리를, 사진 한장을 통해서 듣게되고 그들과 짧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사진은 소리를 담을 수 없지만, 그때의 사진을 보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그때의 대화가 아련히 떠오르는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열흘간 나와 함께였던 고마운 나의 동행


 10일간 3000장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찎어본것도 태어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문이 닳도록 셔터를 눌러댔다. 가끔은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찍기도 하고, 나를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넘겨주면 이내 초점이 맞지 않은 뿌연 사진이 찍혀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좋다. 누가봐도 멋진 사진은 그 중에 한두장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3000장의 사진 모두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아름다운 기억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 어줍잖은 초보 사진가의 비겁한 변명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순으로 쓰는 여행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너무 짧아서 그냥 내가 밟았던 여로를 따라가며 써보려 한다. 사진을 다시 돌아보고 글을 쓰며 내가 느끼는 것 처럼, 여행기를 읽어가며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따라 함께 걷는듯한 기분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잠보!아프리카] 연재 순서

1_ 프롤로그_ 여행하며 사진찍기
2_ 설레임,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3_ 다르에스살람, 탄자니아와의 첫 만남
4_ 지독한 배멀미와 함께 잔지바르 가는 길
5_ 야시장에 가면 있는 것은
6_ 스톤타운 골목길 아침 풍경
7_ 스파이스 투어, 아찔한 시나몬의 유혹
8_ 잔지바르의 보석, 능궤에서의 하룻밤
9_ 12시간 버스타기, 아루샤 가는 날
10_ 아!세렝게티 _사파리 1일차 _마라냐 호수
11_ 아!세렝게티 _사파리 2일차 _응고롱고로 분화구
12_ 아!세렝게티 _사파리 3일차 _타랑기레 국립공원
13_ 국경을 넘어 나이로비로
14_ 카니보어에서 악어와 타조를 맛보다
15_ 나이로비 중심에서 커피를 외치다
16_ 맘보! 아프리카, 아쉬운 작별
17_ 에필로그_

*연재가 진행되며 순서나 구체적인 제목은 바뀔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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