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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한 포즈의 조각상들인 '미투나'로 유명한 카주라호. 델리나 바라나시 같은 대 도시들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작고 한적한 곳이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일까. 한국인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 할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큼직한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 우리와 조금은 다른 모습의 외국사람들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걸 듣고 있다보면 참 신기하기도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평소와는 달리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자가 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딜가도 나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예정보다 조금 오랫동안 카주라호에 머물렀는데 어느새 나는 마을의 스타(?)가 되어있었다.  마을 어귀의 나무밑에 앉아 동네 꼬마들에게 한국 이야기를 한창 들려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보라색 오토바이를 탄 왠 인도 청년 한명이 내 앞에 멈춰선다.

 "한국에서 왔어~? 우리가게 놀러와~ 전지현도 왔다갔어!"

 너무나 유창한 한국어에 순간 흠칫할 정도였지만, 워낙 한국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상업이 발달한 곳이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그냥 예의상 몇마디 대화만 해줄 생각이었다. 그가 이미 한국에서는 꽤 유명한 '민수'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지 뭐야. 


  민수는 작은 악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24살 청년이다. 본명은 Sareef Khan 이지만, 조금 토속적인 한국이름 '민수'를 마치 본명같은 가명으로 쓰고있다. 좀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지 그랬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이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가게 앞에도 대문짝만한 글씨로 '민수'라고 써놓기도 했더라.

 카주라호에 머무는 내내 매일같이 민수네 가게에서 수다를 떨며, 또 찾아오는 한국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워낙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한국인을 대하는 스킬이 가히 수준급이다. 여성들에게는 예쁘다는 입에발린 말을 섞어가며 악세사리를 이것저것 권해보고, 남자들에게는 가끔 야한 사진을 보여주는 짓꿎은 장난도 서슴치 않았다! 나도 한번 멋모르고 당해버리고 말았다. 하하...



 책을 보고 일부러 공부한것도 아닌데, 카주라호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하게 되었다는 민수. 얘기하고 있다보면 인도인인지 한국인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하지만 '왜냐면'을 '왜니까'로 계속해서 틀린다. 아무리 틀렸다고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누가 가르쳐준거야 이거!

 하루는 민수가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는데 가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자그마치 4층짜리 개인주택이다! 얼핏 봐도 다른 곳에서 보았던 일반 주택들보다 더 크고 화려해보인다. 심지어 방안에서 양(?)도 키우더라. 집이 너무 멋지네, 민수는 행복하겠네, 하고 말하는데 왠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몇일간 민수와 시장도 가고, 집에도 놀러가고 하면서 가끔씩 툭툭 진지한 이야기를 할때가 있었다. 소위 '있는'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기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하소연을 해온다. 한국인들이랑 친구하는것도 즐겁고 이야기하는것도 좋지만 그들은 그저 잠시 머물러 지나가는 '객'일 뿐이고, 자기는 또다시 외로워지고 만다는데. 왠지 늘 밝게만 웃던 민수 얼굴이 그날따라 어두워 보였다. 정이 많은 한국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말 뿐만 아니라 민수의 마음도 한국사람이 다 된게 아닐까.

 카주라호를 떠나는 그날, 배웅나와준다던 민수가 결국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인사는 해야지 싶어서 가게로 무작정 뛰어갔다. 왜 안나왔어, 약속했으면서. 떠나는 모습을 보면 더 아쉬울것 같아서 못나갔어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해준다. 다음에 또 다시 인도를 찾게되면 카주라호는 절대 까먹지 않을꺼라고,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편지 할테니 답장하라며. 그렇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바라나시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10일도 채 안되어서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Sareef Khan, 민수였다.
 헤어지는날의 표정이 떠오르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데 다행히도 유쾌한 성격이 메일에서도 읽혀지는 것 같았다. 끝까지 자기 이름은 'Minsu'라고 소개를 한다. 죽을때까지 민수라고 하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답장을 해주며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며 카주라호에서의 일들을 모두 함께 적어보냈다. 직접 인화에서 택배로 보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두번째 편지에 적혀있는 I am good here. 라는 말이 참 듣기좋다. 이제는 그만 외로워하고 하루하루 즐거운 일만 가득하기를... 민수형아~ 알겠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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