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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는 정말이지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다. 일정도 필요없고, 많은 생각도 필요없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눈길이 가는대로 가고싶은 길을 따라 걸으면 그만이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여유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인도에 매력에 푹 빠져있는 내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

 여행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패키지 여행이다. 계획을 짜느라 수고할 필요도 없고 그냥 여행 경비와 비용만 준비하면 모든게 알아서 척척 이루어진다. 게다가 안전하기까지 하니 그보다 더 편안한 여행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도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 안전한 곳도 아니고 불편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많은 여행자들이 배낭여행을 선택하게 만드는 인도의 매력은 대체 뭘까.

 라자스탄 남부의 작은 도시 치토르가르는 가이드북에도 몇페이지 나와있지 않은 그런 곳이다. 한때 메와르 왕조의 전성기를 보냈던 찬란한 역사가 있지만 여러번의 침략과 전쟁을 겪으며 지금은 폐허가 된 유적들 일부만이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너무나 가고싶었다. 겨우 사진 한장을 보았을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우데뿌르에서 치토르가르로 향하는 로컬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늘이 너무나 예쁜 날이었다. 꼭 치토르가르가 아니더라도 그저 어디라도 걸으면 좋을것만 같은 기분좋은 날씨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로컬 버스는 그리 편하지 않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마냥 달콤하기만 하다.


 가봐야 할 곳도, 보아야 할 것도 너무나 많은 인도에서 욕심을 부리다가는 병이나기 십상이다. 라자스탄주에만 해도 조드뿌르, 자이뿌르처럼 유명한 도시들이 있어서 그런지 치토르가르같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모양이다. 치토르가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부터 수많은 릭샤왈라들이 버스 뒤를 쫒아오며 자기 릭샤를 타라고 아우성이다. 그날 치토르가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나 하나 뿐.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나 말고는 서양 관광객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내 앞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던 수많은 릭샤왈라들 중에서 결국 인상 좋아보이는 한 아저씨의 릭샤를 선택했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대도시의 릭샤왈라들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다들 순수하고 착해보이는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만을 선택해야했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내가 고른 릭샤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치토르가르성은 이 작은 마을의 유일한 관광지다. 높은 언덕에 있어서 걸어서 돌아보기는 조금 힘들고, 대신 릭샤를 하루동안 전세내서 타고다니며 구경하는게 편하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기다려주고 함께 걸으며 가이드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는 릭샤의 비용은 단돈 100루피. 우리나라돈으로 2700원이면 충분하다.

 다른 릭샤왈라들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고른 아저씨는 참 좋으신 분이었다. 손님은 왕이라고 운전석에 크게 써붙인 팻말이 눈에 띈다. 행여나 내 옷이 더러워질까 쉬지않고 의자를 닦아주시는 모습에, 오랜만에 인도에서 제대로 손님대접 받는 기분이다.

 성에 올라오자마자 탁 트인 전경에 입이 벌어진다. 아니 이런 비경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사진보다 백배는 더 멋진 풍경이다. 더 멋진 사진이 책에 실려 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와볼 수 있었을 텐데... 나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그런 곳이다.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 설명에 더욱 힘이 실린다.
 메와르왕조의 슬픈 역사이야기부터 지나가는 건물마다 이런저런 작은 사연들까지 세세히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참 멋져 보인다.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베어있었다.

 괜찮으면 자기 집에서 묵어가는건 어떠냐고 하신다. 다른 도시에서 이런 제의를 받았으면 한 귀로 흘려버렸을 지도 모르지만 왠지 아저씨 집에서는 하루쯤 묵어가도 좋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데뿌르에 숙소를 잡아놓고 당일치기로 온 일정이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니 너무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가이드 역할을 해주시느냐 너무 수고하신 아저씨께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사드리려 했더니 한사코 거부하신다. 손님에게 그런걸 받을 수는 없다며 되려 우리에게 음료수를 한잔씩 사주시더라. 잠시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 아래 앉아서 쉬어가 본다.

 치토르가르는 물론 많은 사연과 역사의 한이 서린 유적지이지만 그런걸 모르더라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숙연해지는 그런 풍경이었다. 다 무너져버린 건물터와 여기저기 널려있는 돌조각들은 하나같이 저마다 사연을 품고있는것만 같다. 그날따라 하늘은 또 왜그리 예쁘던지...






 릭샤이 엔진 열기때문인지 몰라도 아저씨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날이 너무 더우니 잠깐 쉬고 계셔도 좋다고 말씀드리자 근처를 둘러보고 다시 여기로 오라고 하시고는 이내 낮잠을 청하신다.
 외국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치토르가르성 안에서 홀로 여기저기 걸어보는 재미가 꽤 괜찮다.
 이 모든게 내것인 양 하늘을 향해 두팔을 쭉 펼쳐본다. 하늘이 참 파랗다.








 글을 쓰려고 사진을 찾아보다보니 이상하게도 치토르가르에서는 세로로 찍은 사진이 많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녹음을 한 장의 사진안에 모두 담고 싶었던 내 욕심때문일까..^^

 멀리 승리의 탑을 뒤로하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인다. 옆에 잠깐 누워서 나도 낮잠을 청해볼까 하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소똥때문에 도저히 안되겠다. 에이...




 자리를 옮겨서 어디에 앉아볼까 두리번 거리다가 매력적인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것 같은데 끝이 잘려있다. 하늘을 향해서 올라가는 계단인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조심조심 올라가 계단 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아참, 그림을 그려야지.
 헐레벌떡 노트를 꺼내다가 1층 바닥으로 가방이 통째로 떨어져 버렸다. 별일 없겠지 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오늘따라 그림이 너무 마음에 안들게 그려지길래 대충 마무리하고 내려와 가방을 주웠다.
 아뿔싸. 가방을 열어보니 디카 액정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다행히 메모리 카드는 무사한듯 했지만...



 한숨 잘 잤다고 덕분에 고맙다는 아저씨를 재촉해서 성의 나머지를 한바퀴 휭 돌아본다.
 우데뿌르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는 우리에게 연신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 하신다. 다행히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딱 맞춰서 터미널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별 생각없이 지나칠 뻔 했던 치토르가르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될 줄이야. 기분좋게 팁이라도 더 드릴까 하고 생각했더니 아저씨가 처음 약속했던 100루피만 받겠다고 하신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치토르가르에서 아저씨가 설명해주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벌써 머리에서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공부하러간게 아니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사진속에,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치토르가르의 풍경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에 여행을 하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치토르가르를 꼭 가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 작은 도시에서 너무나 큰 행복을 느끼는 나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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